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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ybook
한동원의 글 수첩


밤에

2003 7. 4




소 무식스런 일이기는 하지만, 때로는 세상 사람들을 두가지로 분류해보게 될 때가 있다. 예를들면 이런 식으로 말이다.


고양이를 좋아하는 사람 : 개를 좋아하는 사람
만년필을 좋아하는 사람 : 연필을 좋아하는 사람
버스를 좋아하는 사람 : 기차를 좋아하는 사람
여름을 좋아하는 사람 : 겨울을 좋아하는 사람
눈을 좋아하는 사람 : 낙엽을 좋아하는 사람
콘류를 좋아하는 사람 : 하드류를 좋아하는 사람
신라면을 좋아하는 사람 : 오짬을 좋아하는 사람
여자를 좋아하는 사람 : 남자를 좋아하는 사람...은 아니고,


어쨌든 이런 분류들은 각각 나름대로 인간의 특징을 드러낸다고 생각된다. 뭐, 어디에선가 '성급한 일반화의 오류' 뭐 이런 말이 들려오는 것 같지만, 언제나처럼 무시하고..

현재 상황에서 내가 생각하고 있는 분류는 바로 이거다.

낮을 좋아하는 사람 : 밤을 좋아하는 사람

나는, 말하자면, 밤을 좋아하는 사람 축에 속하기 때문에, 특히 요즘같이 작업이 많을때면 내가 이 부류에 속해있다는 사실이 상당히 고맙게 느껴진다.

해서, 그 고마움에 보답하는 마음으로, 지금, 밤이 메인 생활 시간대가 됐을때의 좋은 점에 대해 생각해보고 있다.

바쁘다면서, 참 별 한가한 짓 다하네.. 그래도 뭐 어쨌든, 시작했으니 어쩔꺼야.

해서, 적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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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이 주 생활 시간대가 되면..


* 화장품 값이 많이 들지 않는다. (물론 나는 해당사항 없고)
* 의상비 역시 많이 들지 않는다.
* 세탁비 또한 많이 절감된다.
* 아니, 생활비 자체가 대폭 절감된다. (돈 쓸 수 있는 곳이 별로 없다)
* 여름에는 햇볕 걱정 안하면서 산책할 수 있다. (당연하지)
* 그러다가 가끔 재수 좋으면 뽀뽀하는 커플을 구경할수도 있다.
* 상대적으로 영양가있는 TV 프로를 볼 수 있다. (물론 '한밤의 TV 연예' 이딴건 제외다)
* 음악을 잡소리의 개입없이 들을 수 있다.


등등.


그러나, 이 모든 장점중에서 최고봉인 것은 바로

'밤라면을 끓여먹을 수 있다'

는 점일 것이다.


밤샘하는 사람에게 라면만큼의 위안이 또 어디 있으리요.

어둠 속에서 파란 가스렌지의 불빛을 바라보며 냄비의 물이 끓기를 기다리고 있노라면, 깊은 바닷속에서 저 위 흐릿하게 떠 있는 달빛을 바라보는듯한 착각에 빠지게 된다.

그리고 어쩌면, 그 순간이야말로 라면 면빨과 국물 그 자체보다도 훨씬 더 큰 위안을 주는 것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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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밤샘 작업을 하는 분들에게 행복을.

ps.

만약 다음날 닥쳐올 회한과 자책이 두려워 차마 라면을 못드시는 분이 계시다면, 라면대신 음악으로 위안을 삼으시길.

그런데 이렇게 적으려니 웬지 약올리는 것 같군그래...

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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