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즈리턴> 이야기
2003 7. 4
막상 봤을때는 그닥 별다른 감흥이 없지만, 돌아서고 나면 자꾸만 생각나는 그런 때가 있다.물건이건 영화건 사람이건, 대부분 이런 경우야말로 '제대로 걸린' 경우인데, 그렇다면 내게는 <키즈 리턴>이 제대로 걸린 영화다.
그리하여 나는, 극장을 나올때는 약간 막막한 느낌까지도 들었던 이 영화를 지금까지 10번도 넘게 보게 된 것이다. 집요하다면 참 집요하고, 한가하다면 참 한가하다. 어쩌면 둘 다일지도...
어쨌든,
이렇게 보고보고또보고 하던 와중에, 드디어 어제가 돼서야 내가 뭔가 큰 착각을 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게다가 그 착각은, 경악스럽게도 내가 <키즈 리턴>에서 가장 멋지다고 생각했던 장면에 대한 착각이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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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는 분은 아시겠지만, 이 영화는 왕년 고등학교 시절에 양아질 깨나 하던 애들 두 명이, 길거리에서 우연히 재회하는 장면으로부터 시작된다. 한명은 쌀집 배달맨, 또 한명은 백수로 말이다.
그리고, 쌀집 배달맨 '신지'는 백수 '마사루'에게 옛날처럼 자전거 한 번 태워주겠다고 하고, 결국 얘들은 자전거를 타고 길을 달리기 시작한다.
얘들이 탄 자전거가 언덕으로 잠시 올라가면, 그 밑으로 따라가던 카메라는 언덕의 벽..같은 거시기..를 만나고, 덕분에 화면 전체가 하얀 벽으로 들어찬다. 그리고, 그 위에 이 영화의 타이틀 "Kids Return"이 깔리게 된다.
그리고 다시, 언덕이 낮아지면서 자막은 사라지고, 그 자리에는 지금과 똑같은 모습으로 자전거를 타고있는 고교시절의 걔들이 있다.
그리고 영화는, 얘들이 쌀집 배달맨도 백수도 아닌, 고교생 양아였던 시절로 돌아가게 된다.
그리고 영화는 본격적으로 그 'Kids'에 대한 얘기를 시작하게 되는 것이다.
코오...
많은 이유들이 있을 수 있겠지만, 특히 내가 이 장면을 그토록 좋아했던 이유는, 이 장면이 지금까지 본 영화들에서 가장 검소하면서도 가장 멋지게 현재에서 과거로 넘어가는 장면이기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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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이건 나의 일백푸로 착각의 소산이었다.
위의 화면에서 애들이 입고 있는 옷을 보시면 아시겠지만, 언덕이 화면을 가리기 전의 애들과 언덕이 지나간 다음의 애들은 그냥 똑같은 애들이다. 현재가 과거로 넘어가구 그런거 절대 아님이다.
맞다. 이런걸 이렇게 착각하는게 더 어려운 일이라면 어려운 일이다. 아주 확실히 알아먹으라구 시뻘건 옷까지 입혀놨으니까 말이다.
그런데도, 대체 나는 왜 이런 착각을 하게 된 것일까..
그 이유는 자명하다.
그건, 내가 이 장면을 그런 장면으로 생각하고 싶었기 때문이었던거다.
그 굳디 굳은 신념은, 이 영화를 10번이 넘도록 볼때까지도, 이 말도 안되는 착각을 계속하도록 만들었던 것이다.
아아...
영화의 마지막 부분에서, 이 자전거 씬하고 똑같은 장면이, 이번에는 정말로 현재 버젼으로 한 번 더 나오는 바람에 착각의 가능성이 더 높았다...는 구차한 변명은... 하지 않으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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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쨌든,
이것이 나의 <키즈리턴> 최고의 장면이, 어느날 아침 쪽지 한장조차도 남기지않고 사라진 연인처럼 흔적도 없이 사라져버렸다..고 하면 심하고, 여튼 사라져 버리게 된 사연이다.
서늘한 푸른빛의 화면과, 그것과 완전히 하나가 되는 음악, 그리고 자전거를 타고 달리는 애들의 무덤덤한 표정은 여전히 짜릿하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장면은 이미, 그 유명한 대사 한 방이 나오는 마지막 장면에게 최고의 장면의 권좌를 내주고 있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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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로는, 내 멋대로의 착각에서 깨지 않았으면 좋았을껄 하고 생각하게 되는 때가 있다.
착각이면 좀 어때. 나만 좋으면 그만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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