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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ybook
한동원의 글 수첩


멋진 만화 <닥터 스크루>의 추억

2003 7. 17





집요한 듯한 느낌이 없지 않지만, 기왕 내친김에 한 번 더 <닥터 스크루> 얘기.

그러니까 98년 가을, <미술관 옆 동물원> 개봉 직전에 이정향 감독을 인터뷰 했던적이 있다.

자랑이냐구? 자랑 맞다.

여튼, 영화를 보면 알 수 있지만, 이정향 감독은 상당히 재밌고 명랑한 사람이다. 말을 재미있게 잘 하는데다가, 그 재미있게 잘 하는 말의 소재 또한 재밌어서 좀처럼 그 재미의 순환구조가 붕괴되지 않는다.

뭐, 스탭들은 그 독재스러움과 완벽주의스러움에 치를 떨기도 한다지만 나는 해당 사항 없으니까. 흠흠.

어쨌든,

어쩌다가 그 얘기가 나온건진 기억나지 않는다만, 한참을 각잡고 인터뷰란 걸 하던 차에 갑자기 <닥터 스크루> 얘기가 나왔다.

그리고 둘 다 동시다발적으로 애들처럼 소리를 지르면서 환호했던 기억이 있다. 영화사 관계자가 무신 일인가 싶어 방으로 들어왔을땐, 둘이서 거의 하이 파이브를 할 기세였지 아마도..

뭐 그런 오바를 하고 그랬냐라고 생각하실지도 모르겠지만, 당시에는 이 만화를 아는 사람이 그닥 많지 않던 시절이었기 때문에(지금도 그런가..), 그 동지감은 정말이지 상당할 수 밖에 없었다.

덕분에 인터뷰는 급격히 수다化 쪽으로 방향을 선회하게 됐고, 가지고 간 녹음기 테이프는 앞/뒷면을 다쓰고도 한참 부족해져 버렸다. 어차피 녹음 다 했다고 하더라도, 대부분 기사로 쓸 수는 없는 것들이었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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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작품이란 이렇게,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마음을 열게 만들어주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요즘 줄줄이 사탕으로 개봉하고 있는, 도대체 영문과 정체를 알 수 없는 물량만 디립따 쏟아붓는 영화들을 보고 있노라면, 더더욱 그런 추억이 그리워지는 것이다.


ps.

언젠가 이정향 감독을 다시 만나면, "그럼, <천재 유교수의 사생활>도 아세요?"라는 질문에, 사실은 모름서, 어물쩍 안다고 얼버무렸다는 사실을 고백하고 싶다.

여튼, 덕분에 읽게 된 <천재 유교수의 생활> 역시 훌륭한 만화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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