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연 CG는 영화를 볼만한 것으로 만들었는가
2003 8. 5
보셨는지 모르겠지만, 며칠전 TV에서 <스타워즈 - 제다이의 귀환>을 해줬었다.<V>의 도노반에게나 어울릴법한 루크 스카이워커의 더빙과 그 특유의 꼬장부리는 듯한 필이 사라지고 만 건실한 요다의 더빙이 압권이었던 가운데, 다스 베이더는 그 장엄한 최후를 향해 한 발 한 발 내딛고 있었다.
<제다이의 귀환>은 나의 <스타워즈> 걸작 순위의 끝에서 두번째라는 최하위급에 머무는 작품이었던 데다가, 최소한 스무번은 넘게 본 영화이기 때문에 절대 끝까지 보게되지 않을줄 알았지만, 썩어도 준치라고, 아무리 그래도 스타워즈는 스타워즈였다..
결국, 요다 오비완 아나킨 세명 전원이 나란히 해파리스럽게 공중에 아로새겨지는 마지막 장면의 감동을 추스리며 시계를 쳐다보니, 이미 시간은 새벽 1시에 육박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내가 이렇게 열심히 이 영화를 보게 된 이유는 사실 다른데 있었다.
그건, 이 영화의 전투씬들에 등장하는 미니어쳐들의 멋스러움이 너무나 절절하게 와 닿았기 때문이었다.
그 중 최고는 뭐니뭐니해도 단연 밀레니엄 팰콘. 조지 루카스는 햄버거를 먹던 도중 밀레니엄 팰콘의 모양에 대한 아이디어를 얻었다. 왼쪽의 조종석cockpit 부분은 그 햄버거에서 삐져나와 있던 올리브였다고 한다.
뭐 새삼스럽다면 새삼스러운 일이다만, 확실히 전투기, 전함, 워커, 스피더 같은 <스타워즈>의 각종 기계들은 요즘의 영화들에서는 결코 볼 수 없는 멋과 운치를 내뿜고 있었다.
왜일까. 지금까지 헐리우드에 쌓여왔을 기술이나 노하우로 미루어볼때, 저 20년된 영화의 기계들이 촌스러워 보여야 하는건 당연한데, 오히려 왜 그 반대일까.
그 결정적인 이유는 아마도 이것일 것이다.
디지털과 아날로그의 차이.
<스타워즈>가 물론 모션 컨트롤motion-control 기술을 가장 먼저 적극적으로 도입한 영화임에는 틀림없다. 사람 대신 컴퓨터가 카메라를 움직이기 시작한 그때부터 사실, 영화에 디지털 기술이 제대로 도입되기 시작했던 것이다. 그래서, 조지 루카스를 디지털 영화의 대부("God Father of Digital Cinema")라고들 부르지 않던가.
<스타워즈> 1편 제작 당시, 루크의 집의 종이 모형을 들여다보고 있는 조지 루카스
하지만 그때까지도 여전히, 컴퓨터는 <스타워즈>의 그림을 만드는 일에는 직접 개입하지 않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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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들 아시다시피, 당시 <스타워즈>의 모든 전투씬에 등장하는 무기들은 철저하게 미니어쳐로 만들어졌다. 그리고 지금봐도 물론 훌륭하긴 하다만, 어쨌든 걔네들은 뭔가 약간 어설프다 싶은 티를 내며 화면속을 돌아다녔었다.
<스타워즈 1편>에서 자와족이 타고 다니던 샌드 크롤러Sand Crawler는 무선조종 미니어쳐 티 팍팍 내며 여보란듯이 무대를 굴러다녔고, 낮장면에서의 전투기들은 성냥불로 태운듯한 거뭇거뭇한 띠를 두른채 합성티 팍팍 내면서 날아다녔었다.
모형 상태의 샌드 크롤러Sand Crawler
<제국의 역습>에서의 그 코끼리 로봇(AT-AT Walker)은 그때나 지금이나 여전히 스톱모션티 팍팍 내면서 브레이킹 땐스 같은 걸음을 걷고 있고 말이다.
근데, 그 장면은, 10명이 넘는 전문 애니메이터들이 다섯달이 넘게 조명에 덥혀진 싸우나 같은 세트장에서 작업한 장면이라 하니, 그 고초는 익히 짐작하고도 남음이 있음과 동시에, 말 함부로 하다간 잘하면 맞겠다 싶다는 생각이 든다..
게다가 방진 마스크까지 쓰고 말이지..
게다가 <제국의 역습> 한 편을 위해서만도, 5미터가 넘는 것부터, 손바닥에 올라갈 정도로 작은것까지 무려 50개가 넘는 밀레니엄 팰콘을 만들어야 했다니 그 고초는, 아... 상상도 하기 싫다. 이 더운 여름에는 특히나.
조지 루카스가 학을 떼며 다시는 그런 작업으로 돌아가고 싶지는 않다고 얘기를 하는 것도 인간적으로 이해가 안가는 바가 절대 아니다.
하지만.
하지만 말이다.
그런 어마어마한 고초끝에 만들어진 그림이 주는 감흥은 실로 대단했고, 그것은 CG로는 결코 만들어낼 수 없는 것이었다.
모델 메이커들의 손을 일일이 거쳐서 어렵사리 만들어진 미니어쳐들은, 정교하고도 매끈하게 만들어진 요즘의 CG 전투기들과는 비교가 되지 않는 따뜻함과 아름다움과 귀여움을 가지고 있었다. 비록 기계들이지만 기계적이지 않은 그런 따뜻함 말이다.
그리고, 요즘의 CG가 보여주는 현란하고도 '자연스러운' 움직임은 아니지만, 그것들이 눈앞에서 움직이고, 공중전을 벌이고, 전투를 벌이는 걸보고 우리는 감탄해 마지않을 수 있었다.
그것은 분명히 우리 일반인들은 결코 원리를 알 수 없는 비밀의 세계였고, 그야말로 마술같이 만들어진 그 경이의 화면에 '저건 대체 어떻게 만든거지?'라는 신음을 기분좋게 흘려줄 수 있었던 것이다.
게다가, 그것들은 미니어쳐이건 뭐건, 하드 디스크의 데이터가 아닌, 분명한 실물로 존재하는 '현실'이지 않았던가.
이 화면이이렇게 만들어진 것이라는 걸 알고 있던 관객은 당시 몇명이나 되었을까 • •
하지만 요즘은, 그 어떤 화려한 화면을 봐도 그것 자체로는 별 감흥이 오질 않는다.
왜. 그건 그냥 CG일테니까. 또는, CG로 만든거겠지..라고 생각하게 되니까 말이다.
물론 요즘의 영화에서도 미니어쳐는 여전히 쓰인다. 심지어는 실물크기의 모형도 쓰인다. 엄청난 규모의 세트도 지어지고, 배우들은 여전히 특수 분장을 하는데 서너시간은 우습게 분장실에 앉아있어야만 한다.
하지만, 문제는 그렇게 만들어진 화면들 또한 모두 CG로 보인다는 것이다. 가끔식 주연 배우들마저도 CG로 그려버리는 마당에, 대체 CG 같아보이지 않을 것이 어디 있겠는가.
그리하여 이젠, '뭐, CG겠지'라는 주문을 통해, 특수효과의 세계가 주는 경이는 사라지고 말았다.
그건 더 이상 '어떻게 한거지?'라고 즐겁게 궁금해하는 마술의 세계가 아니다. 사람들의 머릿속에서 이미 모든 것은 CG의 소산이 되어버렸다. 실제로 그렇건 아니건 말이다.
결국 조지 루카스가 자신의 특수효과 회사 ILM(Industrial Light and Magic)의 이름에 넣은 Magic이라는 단어는, 이제 더 이상 별 의미없는 단어가 되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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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하여 그 결과는 어떤가.
결국 그것은 물량싸움으로 귀결되고 말았다.
제임스 카메론이 단순히 작가적 철저함과 완벽주의 때문에 실물 크기의 타이타닉 세트를 건조했다고 하여 그를 편집증적일 정도의 완벽주의자로 보는 건 너무나 순진무구천진난만한 발상이다. 헐리우드 애들이 어떤 애들인데.
그 '실물크기 세트'는 처음부터 사람들의 머릿속에 깊숙히 각인되기 위해서 만들어졌다. 영화 개봉 전부터 수도 없이 매스컴을 타고 나간 '실물크기 세트'에 얽힌 이야기 덕분에, <타이타닉>은 관객들로 하여금 CG 장면들마저도 실물을 촬영한 장면처럼 받아들이도록 만들 수 있었던 것이다.
다시 말하면, <타이타닉>은 자신의 '시각적' 스케일을 받쳐줄만한 '심리적' 스케일을 가지고 있었다는 얘기다.
제임스 카메론은 <T2>와 <쥬라기 공원>을 통해 사람들의 머릿속에 확실히 각인된 CG라는 것의 존재가, 특수효과를 대하는 일반 관객들의 사고방식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를 정확히 알고 있었고, 그걸 극복하는 방법도 정확히 알고 있었던 것이다.
반면에, 예전에 미니어쳐와 스톱모션과 모션 컨트롤러를 가지고 씨름하던 시절의 악몽을 극복하지 못했던 듯, 조지 루카스는 새로운 <스타워즈>시리즈를 그 정반대의 방향으로 가도록 하고 말았다. 안타깝게도 말이지.
어쨌든, 그렇게 시작된 물량 싸움은 이제는 점입가경 단순무식 물량싸움으로 가고 있는듯 하다.
그리고 최근들어 그러한 물량 싸움은, 두 개의 대박급 속편 영화들로 하여금 동시다발적으로, 카 체이싱 장면을 위한 도로 하나를 통째로 지을 수 밖에 없게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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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 이 영화들에 그닥 재밌지도 않고 필요하지도 않은 것 같은 자동차 추격씬이 들어가지 않으면 안될 이유는 분명히 있었던 것이다.
이젠, 카 체이싱에서 뽀개져 나가는 차들과 그 차들이 달리는 고속도로는 절대 CG로 만든게 아니며, 이런 퍼포먼스를 보는 것 만으로도 당신이 낸 입장료는 충분히 제값을 한다는 걸 강조할 수 밖에 없게 된 것이다.
그리고 그런 고속도로를 놓고 달린 영화들이 결국 어떤 목적지에 도달하게 되었는가는, 요즘 보시고 계신 바와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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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요즘 스타워즈 시리즈의 컨셉 디자인을 맡고 있는 디자이너들(덕 치앙 등)의 역량이, 왕년 스타워즈 시리즈의 디자이너들(랠프 맥쿼리, 조 존스톤 등)보다 못하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하지만 이들은, 디지털 기술이 주는 자유 때문에 오히려 잃게 될 것들의 중요성에 대해 너무 과소평가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싶다.
때로는 제약이 더 많은 가능성을 열어준다.
싫건 좋건 현실적으로 기술과 돈의 제약을 받을 수 밖에 없는 우리나라 영화가 주목해야 할 점은 바로 이런 점일 것이다.
그리고, 요즘 개봉한 영화 중 <도그빌>이야말로 그런 사실을 아주 멋지고도 훌륭하게 보여주고 있다.
어쩌다가 <스타워즈>로 시작해서 <도그빌>로 얘기가 끝나버리고 말았다. 흠.. 여튼, <도그빌>은 멋진 영화이니 아직 안 보셨다면 꼭 한 번 보시길.
상영시간이 길어서 피서하기에도 딱 좋은 영화니까. 후후.
Star Wars photographs copyright © 1977 by Lucasfilm, LT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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