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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ybook
한동원의 글 수첩


<28일후>를 보고 생각난 영화

2003 9. 20






<28일후>는 오랜만에 본 '제대로 된' 영화였다.

여기에서 '제대로 된 영화'란, 수려하고 능란한 미쟝-센을 바탕으로 의미심장한 메타포를 담지한 씨네아스트의 영상언어를 쉬르리얼리스틱하게 형상화 한 포스트모더니스틱 아-트 시네마를 지칭하는 것인가.

그딴거 아닌건 물론 아실꺼고.

필자가 말하는 '제대로 된 영화'란, 드넓은 도량과 깊은 헤아림의 마음으로 최선을 다해서 이해해주어야만 간신히 납득할 수 있는 영화들, 또 그래야만 본전을 뽑아낼 수 있는 영화가 아닌 모든 영화를 말함이다.

재미 뭐 그런걸 떠나서, 이런 영화를 보면 일단 돈은 아깝지 않다.

<28일후> 역시 그랬다.

이 영화, 모든 좀비영화들이 그렇듯, 아슬아슬하고도 숨막히는데다가 암담암울하기까지 한 영화 - 친구의 표현을 빌자면 '스트레스 받는 영화' - 긴 했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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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쨌든 그 '충격적'이라던 2개의 결말까지 마지막 닭뼈 빨듯 싸그리 챙겨보고 극장을 나서는데, 퍼뜩 드는 생각이 하나 있었다.

'이거 뭔가하구 비슷한데...'

그렇다. 언뜻 보기엔 전혀 공통점이 없는 것 같지만 잘 생각해보면 이 영화와 꽤 공통점이 많은 영화가 하나 있었던 것이다.

<블레이드 러너>.

그것이 그 영화의 제목이었다.

그렇다. 그 <블레이드 러너> 맞다.

일단 두 영화는 기본적으로, 폐허에 가까운 도시를 배경으로 어둡고 암울한 분위기를 시종일관 끝까지 유지한다는 점에서 닮아있다.

또, 2명의 남자와 2명의 여자로 구성된 팀이 생존을 위해서 뭉친다는 기본 설정 또한 서로 닮았다. (<28일후> : 짐, 쎌리나, 프랭크, 해나 <블레이드 러너> : 로이, 프리츠, 레온, 조라)



<28일후>


<블레이드 러너>


그 공통점은 후반부로 갈수록 더 농후해지는데, 후반부에서 웃짱을 까고 건물을 이리저리 뛰어댕기면서 적들을 하나씩 보내버리는 주인공 짐의 모습은, <블레이드 러너>에서 데커드와 마지막 대결을 하던 로이의 모습과 상당히 비슷하다.



<28일후>


<블레이드 러너>


자세한 내막은 모르겠으나, 이렇게 두가지 엔딩이 나오게 된 배경도 <블레이드 러너>와 그렇게 많이 다르지 않을까 싶다.

한국의 SF 영화, 또는 SF 애니메이션 지망생들이여.

눈에 보이는 것만 쫓을 땐, 끝없는 흉내만이 있을 뿐이다.


ps.
요즘은 거시기 나오는 장면에서 모자이크 처리 같은거 전혀 안하던데. 놀랍게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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