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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ybook
한동원의 글 수첩


거대 초식 공룡

2003 9. 25




(나름대로 두뇌명석하여 영화의 앞뒤를 파악하는데
전혀 장애가 없으신 분들은 이 글 읽지 마시길)



시적에 들었던, 절대 신빙성 없어 보이는, 하지만 웬지 자꾸 생각나는 학설 하나가 떠오른다.

공룡은 워낙에 몸집이 큰데다가 태생이 닭대가리여서, 꼬리쪽의 감각이 뇌에 전달될때까지 약 15초 정도의 시간이 걸린다는, 아동계에서는 나름대로 유명한 그 '공룡신경설' 말이다.

때로는, 스스로가 그런 거대 초식공룡스럽게 느껴질때가 있다.

최근에 일을 하던 중, 이런 초식공룡적 신경 전달속도를 또 한 번 체험했더랬는데, 그것은 언제나처럼 영화의 한 장면에서 시작되었다.

그 문제의 장면을 볼작시면 다음과 같다.

<반지의 제왕 - 2개의 탑>에서 아라곤과 김리가 성 밖으로 몰래 나와서, 적진을 기습하는 장면이 있는데 기억하시는지.




이 장면


이 중대한 순간에, 김리는 순간적으로 굉장히 망설이던 끝에 아라곤에게 "날 던져! Toss me!"라고 어렵사리 한 마디 한다.


"자, 저놈들을 작살내주자구!"

"저긴 너무 먼데...?"

"(흡!)......."

"날 던져! Toss me!"


그런데, 그 말을 들은 아라곤은 '너 그래도 괜찮냐?'는 듯, 미소 비스무리하면서도 자세히 보면 상당히 씨쭈그리한 표정을 지었더랬다. 게다가,

"잠깐, 잠깐. 엘프 녀석한테 얘기하면 안돼!"

"한마디도 안할께."


김리는 왜 그리도 던져지는걸 쪽팔려했던 것인가?

아라곤의 그 떫어 보이던 씨쭈그리 표정은 무엇이었단 말이던가?


이것이 지금까지 내내 풀리지 않던 의문이었다. (이 대목에서 '머꼬..'하는 생각이 드시는 분은, 아글쎄 이거 읽지 말라니깐)

그런데 며칠 전 일 때문에 <반지 원정대>를 열심히 돌려보고 있었는데, 갑자기 어떤 장면에 이르러서 '앗! 이거!'하는 생각이 번쩍 들었다. 바로 이 장면이 그 의문에 대한 해답이라는 걸, 갑자기 냅다 버럭 깨달았던 것이다.

반지 원정대가 벨로그에게 쫒겨 모리아의 지하 이곳저곳을 이리뛰고 저리뛰고 뛰고뛰고 또 뛰는 그 숨넘어가는 대목.. 다들 기억하실 것이다.


이거


레골라스, 간달프, 보로미르가 뛰어넘고, 아라곤이 샘을 집어 던져서 넘겨주고, 그 다음 김리를 던지려고 했을때, 바로 그 때, 그는 바로 이렇게 일갈한다.


"아무도 난장이족을 집어던지지 못해!"


바로 이 김리의 호방한 한마디가, 그렇게도 그를 쪽팔려했던 원인이었던 것이다! ..라는 것을, 근 1년이 지난 이제서야 깨닫게 된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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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이 글에서 하고 싶은 얘기는 이거다.


(1) 난쟁이족이건 사람이건 앞일이란 어떻게 될지 알 수 없다.

(2) 그러므로 힘든 일이 있어도 너무 낙담할 필요는 없다.

(3) 호언장담이란 함부로 할 게 못 된다.


이것이 이 글의 주제 되겠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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