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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ybook
한동원의 글 수첩


Endurance

2003 9. 30






"행운을 빕니다, 대장님!"


해변에 남은 대원들이


큰 소리로 외쳤다.


섀클턴은 고개를 돌려


짧게 손을 흔들었다.




이 문구를 처음 봤을때, 질문들이 쏟아졌다.


대원들은 왜 해변에 남겨진걸까

그 해변은 어떤 해변일까

대장님은 해변에 대원들을 남겨둔 채 어디를 가는 것일까

왜 가는 것일까

그들에게는 대체 무슨 일이 벌어진건가

그리고, 앞으로 어떤 일이 벌어지는가


물론, 답은 아무것도 모른다.

하지만 신기하게도, 배를 잃은 남극탐험 대원들과 그들을 남겨둔채 어디론가 떠나는 대장님 사이에 흐르는 절절함은, 그 제로에 가까운 정보량과는 관계없이 그대로 전해진다.

굳이 전부를 보지 않아도 그 크기를 느낄 수 있는 빙산같이 말이다.

그 빙산같이 묵직한 절절함 위에, 고개들 돌려 짧게 손을 흔드는 대장님의 뒷모습이 겹쳐지면, 세상에서 가장 쓸쓸하고도 비장한 장면 하나가 만들어진다.


• •


그러나 그 쓸쓸한 비장함은, 안개 자욱한 바다를 향해 손을 흔드는 대원들의 꾀죄죄한 뒷모습을 만나면 푸근한 온기로 변한다.

늦은 밤, 세명의 주머니 속 동전을 긁어모아서 산 두개의 호빵처럼, 지지리도 꾀죄죄하지만 훈훈한 온기로.


우리의 체온을 덥히기 위해 더 많은 온기는 필요치 않다.



- 알프레드 랜싱, <섀클턴의 위대한 항해(Endurance)>를 읽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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