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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ybook
한동원의 글 수첩


<스모크>에서 - #3

2003 11. 4




늘은 <스모크> 시리즈의 마지막.

사실 <스모크>의 주인장은 누가 뭐래도 담배가게 대장 '오기Auggie'다.

사이러스가 아무리 멋진 캐릭터였다 한들, 오기의 아성을 흔들 정도는 아니었던 것이다. 하긴 그도 그럴것이, 이 영화 자체가 <오기 렌의 크리스마스 이야기>라는 폴 오스터의 단편으로부터 출발했으니까 말이지. 다들 아시다시피, 이 단편은 90년 <뉴욕 타임즈>의 크리스마스 판에 실린 소설이다.

평소에는 전혀 그런거 없다가도, 난데없이 뉴욕 사는 애들에 대해서 부러움을 느낄때가 있는데, 이런 경우 또한 그런 경우 중 하나다.

이런 멋진 단편소설을, 크리스마스 아침에 눈꼽 떼감서 쓰레빠 끌고 나와서 집어온 신문에서 읽을 수 있단 말이지. 흠..

어쨌든, 이 소설에서 "개구쟁이처럼 생겼고, 좀 수상쩍게 생긴 작은 남자"라고 되어 있는, 오기 역할에는 하비 키이틀 말고는 다른 사람을 생각조차도 할 수 없다. 기껏해야 스티브 부쉐미 정도가 次次次次선의 후보선상에 오를까말까.....

그 오기의 진면목을 보여주는 대목들이다.


1.

오기 내가 가게에서 당신 주려고 목걸이를 훔쳤을 때도 당신은 똑같은 소리를 했었어. 기억하지, 자기. 그렇지?

판사가 선택하라고 했지. 감옥에 갈래, 아니면 군대에 갈래? 그래서 난 대학을 포기하고 해군에 들어가서 4년 동안 뺑뺑이를 돌았어. 사람들 팔 다리가 떨어져 나가는 걸 봐야 했어. 그리고 내 머리도 날아가 버릴 뻔했다고.

그리고 당신, 사랑스런 루비 맥너트, 당신은 날 차버리고 그 망할놈 빌하고 결혼했잖아.

루비 당신은 1년 넘게 편지 한 장 없었어. 내 심정은 어땠겠어?

오기 그래, 그랬지. 난 펜이 없었다고. 펜을 구하고 나니 종이가 없었구.


2.

고집 부리지마, 오기. 보상해주려고 해쓰고 있잖아, 모르겠어?

오기 (한숨, 머리를 흔들더니, 봉투 안을 다시 들여다본다) 저 놈은 미쳤어.

아냐, 안 미쳤어. 미친건 자네야.

오기 (어깨를 으쓱한다. 억지 웃음을 짓는다) 자네 말이 맞아. 난 자네가 그걸 모르는 줄 알았지.


3.

(라시드에게) 안녕, 꼬마야.

라시드 (폴의 상처와 붕대를 본다. 놀란다) 와, 걔들이 아주 제대로 한따까리 했군요.

공부 좀 했지. 그 장면을 내 소설에 바로 써먹었어. (사이) 의료비는 백퍼센트 세금 면제고.

오기 (작은 소리로) 그 소설, 국세청에 팔자구.


눈썹보다도 더 오랫동안 얼굴에 붙어있었던듯한 하비 키이틀의 까다로운 양미간 주름같은 주름이 생기는 나이가 되더라도, 이런 유들유들 유머를 구사해 줄 수 있다면,

까짓꺼, 나이 좀 먹으면 어떤가.

날씨가 추워지면, 또 어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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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he Jerry Garcia Band ::
"Cigarettes and Coffee"




text from <오기렌의 크리스마스 이야기>
(열린책들, 2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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