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니까,
이 동화에는 '시가를 문 회색양복 신사'가 나온다니까."
그는 또다시 동화 얘기를 꺼냈다. 오늘 들어서만 벌써 일곱번째.
오랫동안 모든 종류의 동화를 섭렵해 온 동화 팬인 그는, 요즘엔 희귀한 동화를 발견해내는
재미에 푹 빠져있는 중이다.
그리고 바로 어제, 마침내 그는 이 '신개념의 동화'를 발견해내는 쾌거를 이룬 것이다.
"이런 인물이 나오는 동화 본 적 있어? 애기 팔뚝만큼 두툼한 시가에다가 회색 양복까지
입고 있다니까. 감색도, 베이지도, 검정색도 아닌 회색 말이야. 이 동화, 정말 유니크하다고
생각하지 않아?"
2초 정도 뜸을 들인 뒤, 그녀가 대답한다.
"그건 유니크하다고 하기 보다는, 노련하다고 하는 편이 맞을 것 같은데."
순간 그로부터 펑크난 타이어같은 한숨이 새나온다.
그리고 그는, 한참 전부터 만지작거리고 있던 성냥개비의 막대기에 눈금을
새기듯 손톱자국을 내기 시작한다.
눈금의 수가 하나씩 늘어날때마다, 오후의 따뜻한 햇볕이 들어오는 찻집의 테이블 위는 점점 더
짙은 먹구름으로 뒤덮여갔다.
주변 공기가 1943년의 동유럽같은 짙은 쥐색으로 변했을 때 쯤, 마침내 그가 입을 열었다.
"'노련한 동화'는 이미 동화가 아니야. 그렇지 않아? 세계에서 제일 키가 큰 난쟁이는
이미 난쟁이가 아닌 것처럼 말이지.
그러니까 결국 니 말은... 내가 읽은 게 동화가 아니라는 얘기지?"
그녀가 갑자기 당황한 표정을 짓는다.
"아니 아니, 그런 뜻이 아냐."
그녀가 말했다.
"내 말은, 니가 지금 세상에서 제일 키. 큰. 난.쟁.이.에게 세상에서 제일
노.련.한. 동.화. 얘기를 하고 있다는 얘기지."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