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덜군 투덜양 |


당신의 염력관람 신공에 무릎을 꿇소

투덜군 외전 - 어느 기자에게 바치는 찬가


 포스터의 카피와 제목의 느낌만으로는 <포레스트 검프>의 짝퉁 버전이 아닌가하는 의심을 자아내게 했던 <말아톤>은, 소문대로 신인감독 답지 않은 말끔한 연출과 조승우의 연기가 훌륭했던 좋은 작품이었다.

물론 김미숙 씨가 연기했던 ‘엄마’ 캐릭터는 처음부터 끝까지 ‘대단히 상처받은 영혼’으로서의 과도한 일관성을 보임으로써 보는 이들을 상당히 진빠지게 만든 측면이 없진 않았다만, 그래도 ‘초원’이 쇼핑몰을 지나 수영장을 거쳐 지하철을 뚫고 마침내 ‘세렝게티 초원’에서 얼룩말과 함께 달리던 그 가슴 뛰는 장면 하나만으로도 그 정도는 충분히 보상되고 남음이 있었더랬다.

아니 근데... 이거 지금 뭐냐, 코너의 본분을 망각한 채 이런 안투덜풍 발언을 일삼는 행위는 직무유기가 아니냐며 항의의 도끼눈을 떠제낄 준비를 하고 계실 독자들이 계실지 모르겠다만, 나름대로 바람직한 완성도를 갖추고 있던 이 영화를 관람하는 와중에서도 필자의 투덜 모드는 어김없이 작동되고 있었으니, 그 원동력은 다름아닌 이 영화를 필자와 본의 아니게 동반관람하게 된 옆 좌석의 기자분이었다.

물론 필자가, 전화 통화와 문자 메시지 날리기 사이를 쉴 새 없이 넘나들며 정보통신 입국을 향한 지칠줄 모르는 열정을 불사르던 이 기자분의 모습 정도를 두고 이런 얘기를 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원래 언론/배급 시사회란 것이 워낙에 21세기 글로벌 영상문화 창달을 위해 공사다망하신 각종 분들이 참석하는 행사다보니, 이렇게 마감 직전 신문사같은 시끌벅적한 정취도 좀 풍겨주고 그래야 그림이 나오는 것일게다. 여튼,

필자를 진정코 놀라게 했던 것은 이분께서 담지하고 계시던 ‘염력관람 신공’이었다. 온 신경을 집중하여 문자 메시지를 날리고 난 뒤, 곧장 0.5초 내로 스크린을 향해 고개를 들어 영화에 대한 각종 반응들(웃음, 분노, 감탄 등등)을 즉시즉시 날려주시던 이 놀라운 비술 앞에서 필자가 할 수 있었던 것은 그저 경탄의 념을 바치는 일 뿐이었다.

헌데 필자의 그 경탄은 너무나 경솔하고도 때이른 것이었으니, 이분의 염력관람 신공은 <말아톤>이 본격적인 눈물 압출 단계에 접어든 중반 이후에서야 비로소 그 진면목을 드러내기 시작한다.

끝없이 계속되던 그 정보 통신 행각의 와중에도, 결코 막간의 틈새를 놓치지 않고 <말아톤>의 눈물 압출 장면들을 절정의 염력관람 신공을 통하여 낱낱이 흡수, 그것을 곧바로 감동의 눈물 분출로 형상화해내던 그 화려한 멀티 태스킹 동작이 뿜어내던 강렬한 흡인력은, 필자의 주의를 스크린으로부터 옆 좌석으로 송두리째 빼앗아가기에 충분했더랬다.

그리고 마침내 그 모습을 드러낸 장엄한 절정.. 간헐적으로 북받쳐오르던 자신의 감정을 결국 억제해내지 못한 이 고수께서 눈물과 콧물이 한 데 어우러진 음성으로 통화를 계속 이어나가며 ‘나 어떡해’ 또는 ‘어쩌면 좋니’ 또는 ‘아 미치겠다’ 등의 조흥구를 간간이 가미하면서, 동시에 한 손으로는 쉴 새 없이 손부채를 부쳐내며 그 뜨거운 멀티 태스킹 행각의 열기를 식히던 바로 그 대목에서, 필자는 그만 무릎을 꿇어마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아아, 그분의 장엄한 극장내 정보통신 행각..

그것은, 얼룩말떼 노니는 드넓은 세렝게티 초원의 푸르름을 능히 삼켜버리고도 남을만큼 충분히 거대한 것이었다...

씨네 21 489호 (05년 2월 둘째주)

<투덜군 투덜양>은 씨네 21에 격주로 연재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