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 덜 군    투 덜 양


우길 걸 우기시오!

투덜군, <킨제이 보고서> 마케팅의 사실왜곡을 폭로하다


 <식스센스>의 개봉 이래, 최근까지 워낙에 각종 반전무비들의 창궐하여왔던 까닭에 소위 ‘스포일러’는 영화 주최측과 관객측 모두를 위협하는 커다란 적으로 급부상하였다.

평소 ‘시류에 편승하여 대세에 야합한다’라는 신조를 품고 살아온 필자 역시 이에 부화뇌동하여, 사실 그거 좀 안다고 하여 영화 보는데 큰 지장이 생기는 것도 아닌, 아니, 사실 그런다면 그건 오히려 영화쪽이 문제가 있는 거라고 보여지는 사소한 얘기를 적어 놓고도 일일이 ‘이 글은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등등의 자진납세를 하는 등, 오로지 스포일러로 낙인찍히지 않고자하는 작금의 추세를 맹목적으로 따라왔다.

그 영화들이 내놓은 같잖은 반전 나부랭이들의 실체를 백일하에 발고해내기는 커녕 말이다. 부끄러운 일이다..

이에 필자는, 지난날 필자가 걸어왔던 비겁하고도 안이한 행보에 대한 책임을 통감하며, 깊은 반성과 속죄의 의미로서 금번 개봉하게 된 <킨제이 보고서>에 대한 스포일러가 되고자 한다.

<킨제이 보고서>는 <러브 액츄얼리>에 출연했던 두 배우가 주연을 맡고 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이 영화의 대통을 잇는 로맨틱 코메디라는 냄새를 풍기려 최선을 다하고 있다. 심지어 이 영화는 ‘섹스 액추얼리’라는 카피마저 과감히 사용하고 있음으로써, 그러한 의도를 더욱더 강렬하게 어필하고 있다.

그런 이유로 결국 많은 관객들은 이 영화가 ‘킨제이 보고서를 만들 당시 벌어졌던 각종 해프닝을 로맨틱하면서도 코믹하면서도 유쾌하게 그린 영화’ 뭐 이런 걸 기대하셨을텐데, 이는 실상과 달라도 대단히 다르다.

그렇다면, <킨제이 보고서>는 어떠한 영화인가.

이 영화의 정체는 다름아닌 전기영화다. ‘킨제이 보고서’를 만든 알프레드 킨제이 박사의 삶을 다룬, 나름대로는 상당히 진지한 분위기의 전기영화라는 말이다.

그런데도 이 영화가 로맨틱 코메디의 탈을 쓰게 된 이유는 무엇인가. 그것은 물을 필요도 없이, 그렇게 알려지면 손님이 들 것 같지가 않으니까지 뭐겠어. 근데, 그렇다면 이 영화를 로맨틱 코메디로 오해한 채, 봄내음 가득한 핑크빛 사랑과 정열을 가슴 가득 안고 극장을 찾은 관객들은 대체 어쩌라는 얘기인가.

필자는 기억한다. 왕년, 우리나라에서 비디오 문화가 막 태동하던 그 시절, 주최측이 영화의 실체와는 전혀 관계없는 제목이나 카피 그리고 그림을 비디오 껍데기에 박아놓음으로 해서, 수많은 걸작들이 B급 에로영화 또는 3류 액션영화 또는 쌈마이 공포영화로 오해되어, 어두운 비디오샵 구석에서 먼지를 뒤집어써야만 했던 그 시절을 말이다.

<킨제이 보고서>가 그런 걸작들의 반열에 들 수 있는 영화는 결코 아니나, 여튼 그때의 그 아픈 추억은 필자로 하여금 <킨제이 보고서>의 홍보 작전에 반항하는 스포일러를 소리높여 외칠 것을 명하고 있다. 이렇게 말이다.

“<킨제이 보고서>가 로맨틱 코메디라면, <용가리>는 자연사 다큐멘터리다!”

씨네 21 503호 (05년 5월 네째주)

<투덜군 투덜양>은 씨네 21에 격주로 연재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