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    덜    군       투    덜    양

그녀가 안긴 슬픔

투덜군, <데이지>와 전지현이 안긴 슬픔에 가슴 아려하다


"킬러는 그 어떤 흔적도 남겨서는 안된다. 그것은 곧 죽음을 의미하기 때문이다"는 매혹의 바리톤적 독백을 읊조리는 바로 그 순간에 자신의 모습을 낱낱이 CCTV에 촬영당하는 킬러와,

최대한 자연스럽고도 은밀하게 범죄집단의 아지트를 감시코저 매일 똑같은 사복 경찰스러운 복장으로 매일 똑같은 자리에 나타나 매일 똑같은 사람에게 초상화를 그려달라며 자리 잡고 앉음으로써 최대한 자신의 위치를 노출시키고 있는 인터폴 비밀요원과,

그림을 그리기 시작한지 3분 이내에 종이에 묻힌 양보다 훨씬 더 많은 목탄가루를 묻힐 것으로 추정되는 치렁치렁 긴 소매 옷을 입고 초상화를 그리는 초상화 화가를 일제히 등장시킴으로써,

본의 아닌 초현실주의를 완벽하게 실현해내고 있는 영화 <데이지>...

당 영화는 필자로 하여금, 지난 2004년, 딴것도 아닌 주연 여배우의 의상(경찰 제복→공주님 드레스→환자복→흑색정장→평상복)을 중심으로 영화의 흐름을 이어감으로써, 고도의 실험성을 실현해 낸 초장편 극장용 CF <내 여자친구를 소개합니다>를 즉각 떠올리게 하였다.

‘스크린 위에 움직이는 화보집을 구현한다'라는 동일한 목표를 향한 이 두 영화의 집념은 실로 눈물겨운 것이어서,

일반 상업영화에서는 잘 사용되지 않는 정지화면 삽입은 물론이요,

주연 여배우 주위를 연속 20회 이상 회전함으로써 그 얼굴을 완전 암기시켜주는 필살 회전 카메라까지, 이들 두 영화는 현대 상업영화 기법의 다양화에 본의 아니게 기여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본의 아닌 혁신성에도 불구하고 이들이 간과하고 있는 사실이 있으니, 그것은 그 배우들 예쁘고 잘생긴 거, 그렇게 죽어라 강조 안해도 누구나 다 안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사람들은, 누구나 다 알고 있는 그 얘기를 두 시간 내내 들으려고 극장에 가지는 않는다는 사실이다.


특히, 이 두 영화에서 명실상부한 핵을 이루고 있는 인물인 전지현에게는 긴히 전하고 싶은 말이 있다.
그것은, 부디 <여친소>가 개봉될 그 당시 개봉되었던 <몬스터>라는 영화를 기억하시라는 것이다.

물론, 처음부터 그렇게 생긴 배우를 캐스팅하면 간단할 것을, 굳이 샤를리즈 테론 같은 미인을 최선을 다 해 망가뜨려가면서까지 어렵사리 영화를 만드는 것은 경제적 측면에서 다소 문제가 있다고 본다.

허나, 어쨌든 단순 ‘미인’이 아닌, ‘배우’로서의 커리어를 만들어나간다는 측면에서 그것은 배우 본인에게는 매우 현명한 판단이었다 사료된다. 즉, 샤를리즈 테론은 '망가짐'을 통해서 결국 배우로서의 가치를 끌어올릴 수 있었다는 얘기다.

그렇다면, <여친소>와 <데이지>는 어떠한가.

필자는 이 영화들이야말로 전지현을 진정 제대로 망가뜨리는 데 성공한 영화들이라고 본다. 이들 영화에서 전지현은 배우라는 직업인이 아닌, 스타라는 상품에 머물 뿐이기 때문이다.

예쁜 여배우가 자신의 예쁨만을 믿고 2시간 내내 관객 앞에서 화보 촬영을 해댐으로써 하염없이 망가져가는 광경을 보는 것은 관객으로서 매우 슬픈 일이다.

<데이지>가 슬픈 영화일 수 있다면, 오로지 이 이유에서다.

그리고 어디 이것이 전지현 만이 안길 수 있는 슬픔이겠는가.


씨네 21 544호 (05년 3월 둘째주)

<투덜군 투덜양>은 씨네 21에 격주로 연재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