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다.
아니 근데, 새해라구
그래봤자 그냥 숫자가 바뀐 것 뿐이지 않은가, 게다가 진짜 정유년 새해는 설날이 지난 다음부터
시작인데 왜들 벌써 오바냐 등등등 포철 생산라인에 냉각수 살포하는 필의 얘기가 들려오는 듯
하다만,
아, 대체 이런 타이밍에 뭔가 해피뉴이어스러운 기분 함 안내면
언제 내보겠는가. 안그래도 팍팍한 인생살이에 말이지.
하여 <시류에 편승하여 대세와 야합한다>라는 굳은
신조를 올 2007년에도 어김없이 유지해볼라구 하는 필자 역시 신년맞이 분위기에 편승, 몇
가지 소망들을 읊조려보고자 한다.
자, 그럼 지금부터 소망기원체로 문체를 전환코저 하오니, 모쪼록
독자 여러분들께서도 <오늘도 무사히> 그림속의 그 소녀를 떠올리시면서, 삼가 합장
기도하는 마음으로 함께 임해주시길 부탁드려마지 않는 바이다. 뭐 싫음, 언제나처럼, 마시구.
우선 첫 번째 소망.
지난 한 해는 급작스런 국지성 호우로 인한
침수 피해를 입은 등장인물들이 유난히도 많았사옵니다. <연리지>,
<도마뱀>, <사랑따윈 필요없어>, <그 해 여름>, <허브>
등등의 영화에서, 우산도, 우의도, 방수점퍼도, 심지어는 비니루 봉다리 하나조차도 제공받지
못한 채, 아무런 맥락도 없이 냅다 쏟아지던 국지성 호우를 온 몸으로 맞으며 체온저하와 싸워야
했던 가엾은 배우들의 희생이 올해는 더 이상 반복되지 않도록 하여주시옵소서. 그들의
희생은 너무나도 무의미한 것이었나이다.
두 번째 소망.
지난 한 해는 한국 영화계 곳곳에 각종 불치병들이
창궐했던 한 해였나이다. 상영시간 중간 가량을 넘기기만하면, 마치 WHO 절대 권장사항이라도
되는 듯 주연급 캐릭터들을 줄줄이 쓰러지도록 했던 그 불치병들은, 심지어는 인간 뿐만이 아니오라
말(馬) 캐릭터에마저도 무시무시한 마수를 뻗치었던 바, 눈물압착 지향형 한국 영화들에 드리워진
이 불치병의 가공할 위력은 가히 천형이라 하여도 지나침이 없었습니다.
더구나 이러한 불치병은, 주인공급 캐릭터들로
하여금 <마지막 한 명의 고객이 울때까지>를 모토로 삼는 본전보장형 울음을, 최소
10분 이상 지속하도록 하는 주요요인이 되었던 바, <관객보다 먼저 달려 나가는>
이런 울음들로 인해 도탄에 빠진 관객들을 부디 굽어살피시어, 영화판의 불치병들을 거두어 주시옵소서.
지면 관계상, 세 번째 소망부터는 짧게 하겠나이다.
거의 30년대 미키마우스 영화 마냥 평균 10초
간격으로 관객의 감정흐름에 참견을 하는, 오바적 배경 음악을 박멸시켜주시옵소서. 관객들은,
그들이 웃으라고 또는 울라고 강요치 아니해도 그럴만한 장면이면 알아서들 그러나이다.
네 번째, 영화 캐릭터들의 잦은 노래방 출입을
삼가토록 하여주시옵소서. 내 돈 내고 들어간 극장 스크린에서, 배우들이 아무 맥락없이 노래방서
놀고 있는 모습을 보고 앉았어야만 할 때, 관객들은 시청률 높은 드라마들이 말년이 되어 어떻게든
한 회라도 더 끌어보려고 부리는 추태를 보는듯한 기분이 됨을 알도록 하여주시옵소서.
이외에도 기타등등 드릴 소망은 많사옵니다만,
올해도 변함없이 대각선으로 누워 자야할 정도로 협소한 지면만이 허락되어 있는지라, 한 가지만
더 하고 이만 줄이겠나이다.
올 한 해, 부디 작년보다 훨씬 더 좋은
영화들이, 훨씬 더 많은 관객들을 만날 수 있도록 하여주시옵소서.
그렇게만 된다면, 저는 비록 더 이상 투덜거릴
껀수가 없어진다 하여도 더 이상 바랄 것이 없겠나이다.
씨네 21 586호 (06년 1월 둘째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