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    덜    군       투    덜    양

태권 V의 부활에 부쳐

투덜군, 30년 만에 부활한 <태권 V>앞에서 진정한 승리에 대해 생각하다

<로보트 태권 V>가 30년만에 재개봉 되었다.

소싯적 이 영화를 소재로 ‘인간 리플레이 시스템’을 가동했던 경험이 있는, 필자를 포함한 대략 그 정도의 세대에게 <태권 V>는 단순한 영화 그 이상이었다. 여기에서 물론 ‘인간 리플레이 시스템’이라 함은, 영화 관람을 마친 동네 애들이 모여, 서열에 따라 배역 분담을 한 후, 영화의 처음부터 끝까지를 오로지 몸 하나로만 재현해내던 그 시스템을 일컬음인데,

아아, 아직도 생각난다. 주인공 ‘훈이’ 역을 자임했던 최고 서열 아동이 장면 재현을 빙자하여 날려대던 그 무차별적 옆차기와, 대로변 빌딩 역을 강요당했던 서열 최하위 아동들의 ‘무너져내리기’ 동작이.. 여튼.

그 어마어마한 히트에도 불구하고 밀짚 모자의 데코레이숀 리본으로 쓰이거나, 코딱지만큼의 은을 뽑아내려고 박피되거나 하여 사라져갔던 수많은 <태권 V>의 프린트들..

그 엄혹하고도 잡스런 세월을 뚫고 살아남은 필름을 발견해내고 극장에 걸 수 있을 만큼의 품질로 되살려낸 엄청난 집념은 실로 감격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자, 우리 모두 이 대목에서 복원 작업에 임했던 관계자 여러분들께 박수 함 날려주자. 짝짝짝.

그런데 <태권 V>가 발표된 이래 30여년에 거친 세월동안 아직도 풀지 못한 해묵은 문제가 하나 있다.

그렇다. 그것은 다름아닌 ‘태권 V와 마징가 Z가 싸우면 누가 이기나’이다.

이에 대하여 과거 <로봇 대 백과사전>, <새소년>, <소년중앙> 등의 저명한 권위지들에서부터 오늘날의 인터넷 매체들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학설이 제기되어왔으나, 사실 그 어떤 이론도 명쾌한 답을 내리지 못해왔다.

이는 ‘감정 동화 조종 시스템 vs 전투기 결합 조종 시스템’이나, ‘무술 중심 로봇 vs 무기 중심 로봇’ 등등 이들 둘의 대결을 기술적으로만 접근하는 방법론이 그 원인이었던 바, 이러한 접근은 흡사, 떡볶이를 단순히 고추장과 떡쪼가리의 조합으로만 간주하는 단순함에 다름 아니었다 하겠다.

그렇다면, 대체 어떤 관점이 필요하단 것인가. 뭘 물어. 그것은 당연히 영화적 관점일 것이다.

설령 태권 V가 마징가 Z와의 1:1 완타치에서 승리를 거두었다 해도, 이어지는 후속타 없이 결국 일본의 애니메이션들을 어설피 흉내내는데 그쳤다면 그것은 결코 승리일 수 없다. 바로 그런 면에서, 부디 열받지 마시라들, 태권 V는 마징가 Z에게 명명백백히 완패하였다.

이 세상에 결코 공짜란 없다. 당장 손쉽게 이것저것 괜찮은 것들을 베껴다 쓰는 건 당장 좋은 결과를 가져오는 것 같아 보이지만, 그것은 창작에 있어서 독약에 다름이 아니다.

전후 사정이야 어찌되었건, 우리만의 것을 만들어내기 위해 응당 치러야했을 댓가를 지불하지 않고 간단하게 남의 것을 가져다 쓴 댓가를, 우리는 아직까지도 치르고 있다. <태권 V> 이후 우리는 아직까지도 우리를 제대로 휘어잡는 국산 애니메이션을 만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바로 그런 면에서, 태권 V를 마징가 Z에게 패하게 만든 것은 베끼기에 너그러운 우리들 모두일게다.

하지만. 하지만 말이다, 모름지기, 포기하는 순간이 바로 패배하는 순간이라 하지 않던가.

어쨌든 우리는 결국 태권 V를 부활시켜냈다. 그러니 이젠 그렇게 되살아난 태권 V에게 승리를 안겨 줄 차례다. 굳이 마징가 Z 따위를 상대로 한 승리가 아닌, 그 존재 자체로 승리가 되는 진정한 승리 말이다.

이번 30년만의 <태권 V> 재개봉이 그 출발점이 된다면, 김박사도 메리도 지하에서 행복한 미소를 지을 것이다.



씨네 21 588호 (06년 1월 넷째주)



<투덜군 투덜양>은 씨네 21에 격주로 연재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