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가리>
를 보고 나서 (1)

comment

  <용가리>가 개봉할 당시의 분위기는 한마디로 '<용가리>는 구국의 영화다'에 다름이 아니었다. <용가리>에 대해서 조금이라도 씹는 투의 얘기를 한 사람들은 모두 채석장 1년 생산량을 상회하는 양의 돌을 맞았다. 그 돌에는 '한국영화만세!'라는 구호가 어김없이 적혀있었다. 이 글도 그런 당시 분위기의 한가운데에서 썼기 때문에, 나름대로 상당히 비장하며 약간의 오바 비슷한 것도 함유하고 있는 듯 하다. 어쨌든, 꽤 큰 실망감을 삭이며 썼던 글.
  하지만 지금은, <용가리>의 '웬만한 건 신경 안쓰고 오로지 한가지 목표를 향해서만 전진하는' 심형래 영화 특유의 저돌성과 호방함에 상당한 매력을 느끼고 있다. 그 매력은 내가 약 15년 전, 3류 극장에서 동시상영으로 봤던 쌈마이 영화의 거두 <아메리칸 닌자>를 봤을때의 쾌감과 일면 일맥상통하고 있다. <용가리>가 처음 개봉됐던 당시 전국을 완전 풍미하던 '대한민국 만세!'스러운 분위기만 아니었더라면, <용가리>의 그러한 심형래 무비적 매력을 훨씬 더 빨리 감지할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지금 비디오로 출시되어 있는 <2002 용가리>는, 그런 <용가리>만의 매력을 대부분 삭제하고 있어 상당히 안타깝다. 특히, 용가리가 당수로 'IMF'라는 간판이 걸린 빌딩을 반쪽으로 뽀개는, 잊을 수 없는 그 장면이 삭제되었다는 사실은 거의 좌절이다.

어쨌든, 우리동네 <2002 용가리> 비디오 빌려가신 분, 아무쪼록 조속한 테입 반납을 촉구하는 바이다. 제 아무리 매니아라도 배타적 독점은 용서될 수 없는 것이 아니던가.

 
"이것은 초 국가적 비상사태로서 전 국가가 단합해서 사태를 해결해야 한다"
                                                                              - <용가리> 중에서

1.

<레닌그라드 카우보이 미국에 가다> 를 만들고나서 아키 카우리스마키 감독은 이런 말을 했습니다. "이 영화는 영화사상 최악의 영화다. 물론 실베스타 스탤론의 영화들까지 생각한다면 얘기가 달라지겠지만, 그건 영화가 아니기 때문에 고려할 수 없다." 저는 카우리스마키가 <용가리>를 봤다면 실베스타 스탤론에게 닭똥같은 사죄의 눈물을 흘리면서 진심어린 사과를 했을꺼라고 확신합니다.

2.

세상에는 기본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제 아무리 허술하고 황당한 것 같은 헐리우드 영화도 적어도 상업 영화가 지켜야 하는 기본적인 게임(이 게임은 물론 관객과의 게임이 되겠죠)의 규칙은 지키고 있습니다. 지지를 하건 비판을 하건 어쨌든 그 영화에 대해서 얘기를 할 수 있는 것은 그 영화가 그럴만한 최소한의 가치는 가지고 있기 때문이겠죠.

상명대 조희문 교수가 "한국 SF의 신기원을 이룩했다"고 말한 바로 그 영화 <용가리>는, 그 '기본'이라는 중앙선을 마구 넘나드는 스포츠카와도 같습니다. 물론 그 운전석에는, 그 이름만 들어도 가슴 벅차 올라 집팔고 땅 팔아서 '바이 코리아' 주식 왕창 사고 싶어지는 이 자랑스런 대한민국의 신지식인 1호 심형래씨가 타고 있습니다. 'CGI& Miniature'라는 이름의 이 120억원짜리 스포츠카는 그 성능을 감당 못하는 서투른 운전자 덕분에 방향을 못 잡아 아슬아슬하게 비틀거리는 건 말할 것도 없고 급출발, 급정거를 반복합니다.

그리고 <용가리>는 라인을 완전히 무시하고 여기저기 뻥뻥 공만 차대는 축구선수와도 같습니다. 그 선수, 120억원 어치의 근육강화제 힘만 믿고, 옆에서 보기에도 안쓰러울 정도로 열심히 차댑니다. 그리고 그 선수, 시사회장에서 이런 얘기를 합니다. "저 뿐만이 아니고 저희 선수 모두 쓰러져 가면서 열심히 찼습니다. 예쁘게 봐 주세요." 그 선수들, 밤샘해가면서, 쓰러져서 병원에 실려가면서 열심히 부지런히 공을 찼을지는 모릅니다. 아마 정말로 그랬을거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이를 어쩝니까. 골문 안에 들어가 있는 공은 단 한개도(정말도 단 한개도!) 찾아볼 수 없군요.

이 세상에는 단계라는 것이 있습니다. 아무리 우스워 보이는 것이라 할지라도, 자신이 그것을 할 수 없다면, 그리고 그만한 단계에 도달하고 싶다면, 나아가서 그것을 뛰어넘고 싶다면, 그것을 위해 계단 하나하나를 밟아 올라가야 합니다. 그 일이 아무리 더디고 힘들더라도 말입니다. <용가리>에 나온 대사로 하면 이런 말이 됩니다. "세상 모든 일은 그 대가를 치러야 한다구! Everything in the world has it's own price!" 이걸 이리도 잘 알고 있는 심형래 감독 자신은 정작 이 사실을 잊고 있었나 봅니다.

그리고, 이걸 잊고 있었던 건 우리들도 마찬가지입니다.

3.

오늘(7월 16일)자 동아일보에서 상명대 조희문 교수는 "이 영화를 헐리우드 영화들의 완성도와 비교하는 것은 불공평하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정작 헐리우드 영화와의 비교를 원했던 것은 심형래 씨 자신이었습니다. 그가 언론 여기저기에서 "헐리우드 SF 영화에 비해 손색이 없는 영화를 만들겠다" 등의 말을 했던 것을, 우리는 몇 번이고 기억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여기에서는 <용가리>를 <고질라>에 비해서 어쨌다는 식의 얘기는 하지 않겠습니다. 그럴 필요가 전혀 없으니까요. 게다가 헐리우드 영화의 특수효과를 거론할 필요도 전혀 없습니다. 이 영화는 지금까지 소위 '한국형 블럭버스터'라는 타이틀로 공개되었던 영화들과의 비교로도 충분합니다(사실 이 비교 자체도 이 영화들에게 대단히 미안한 일이지만).

적어도 <퇴마록>, <쉬리>, <건축무한..>같은 영화들에서는 사과 궤짝 같은 합판에'Restricted Area(제한 구역)'를 써서 길바닥에 푹 박아놓지도 않았고, '미 국방부 작전통제실'에 어린이 회관에서나 볼 수 있을 조잡한 한반도 그림과 행성들 그림을 그려놓지도 않았고, 간이 화장실에 간판이랍시고 연두색 색지위에 매직으로 'TOILET'를 갈겨 써붙이지도 않았고, 맨질맨질한 달력 종이에 이상한 무늬 대충 인쇄해서 대충 구겨놓은 종이를 '고대의 예언서'라고 우기지도 않았고, 강촌 민박집 같은 세트를 '미 국방부 작전 회의실'이라고 우기지도 않았으며, '동평화 의류상가' 간판이 나오는 곳을 미국이라고 우기지도 않았습니다(<황혼에서 새벽까지>의 카피 중 "In the middle of nowhere"라는 말은 <용가리>를 위해 아껴뒀어야 했습니다).

이건 '옥의 티 찾아내기' 류의 얘기는 결코 아니니 오해 없으시길.

떼돈 들인 CG로 괴물들, 헬기 만들고, 미니어쳐 만들어서 부수고 태우고 터뜨리면 뭐하나요. 저런 기본도 안 되어있는 세트, 소품, 조명, 편집, 촬영이 그 비싼 장면들도 모두 싸구려 떠리로 보이게 만들기에 충분한데요. 조선일보 이동진 기자는 "<용가리>의 정말 아쉬운 부분은 특수효과가 아니라 이야기와 연기라는 가장 기본적인 요소"라고 했는데, <용가리>에 대한 아쉬움이 연기와 이야기에까지 미칠 이유는 조금도 없습니다. 이 영화가 지키지 못하는 "기본적인 요소"는 연기와 이야기 같은 고차원적인 것이 아니라, 그 보다 훨신 기초적인 - 조금만 돈을 들이고, 조금만 신경을 썼어도 지킬 수 있었던 - 것들이니까요.

사실 저는 '이런 상황에서라면 내가 배우라도 저렇게 연기(?)할 수 밖에 없겠다' 싶어 배우들이 안쓰러워 보이기까지 했습니다. 이야기로 따지면 '어린이의 눈높이에서 보면 얼마든지 재밌을 수 있다'고 강변할 수도 있을지 모릅니다. 하지만 제가 이 영화(이걸 영화라고 부를 수 있다면)를 보면서 화가 났던 가장 큰 이유는, 연기가 형편 없어서도 아니고, 스토리가 유치해서도 아닙니다.

그것은 <용가리>가 영화로서 지켜야 하는 최소한의 품질, 관객(그것이 어른이 되었건, 어린이가 되었건간에)에게 지켜야 하는 최소한의 예의(!)도 지키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4.

"전 세계가 인정한 SF대작"이던 <용가리>가 이젠 슬그머니 "어린이의 눈높이로 보아주셔야"하는 영화가 되었습니다. 그럼 이 영화, 과연 어린이들의 눈높이에서는 재밌게 보일까요. 저야 동심의 세계를 잃은지 이미 오래인지라 "올 여름 아이들에 게 가장 신나는 볼거리가 될지도 모른다(조선일보 이동진 기자)"는 예측을 할 능력은 없습니다만, 과거 영구 아트무비의 영화들이 왜 아이들에게 인기가 있었는지 대충 짐작해 볼 수는 있죠.

그것은 아마도 자신들에게 익숙한 사람들이, 익숙한 언어로, 익숙한 캐릭터(영구)를 연기하면서, 익숙한 한국식(아니, 영구식) 코미디를 적당히 섞어왔기 때문일 것입니다. 물론 다분히 과장된 특수효과에 대한 선전(우리의 기억속에는 <티라노의 발톱>이 <쥬라기 공원>의 완성도에 접근하겠다면서 기염을 토하던 일이 아직도 생생합니다)도 한 몫 했었구요.

영구아트무비가 <용가리>에서 아이들을 위해 남겨둔 것이라곤 마지막 항목밖에는 없습니다. 물론 '영구'는 등장하지 않으며, 배우들은 모두 '용가리' 발음도 못해 '영개리'라는 국적불명의 괴수를 만들어내는 외국인들 뿐이고, 당연히 대사는 모두 영어 대사이며, 최후의 보루 '제로나인(09) 슬랩스틱 코미디' 마저도 전혀 등장하지 않습니다. 영화평론가 변재란씨는 동아일보에서 "성인들이 보기에는 허술하고 어린이들이 빠지기에는 어렵다"고 했는데, 이 말을 좀더 젊잖빼지 않는 버전으로 고쳐서 이해하면 <용가리>에 정확히 어올리는 지적이 될 것입니다.

이제 아이들이 <용가리>를 즐기는 방법은 이런 함량미달의 불량식품 대신에 그것과는 거의(또는 전혀) 상관없는 인형을 끌어안고, '용가리 치킨'에서 닭다리 뜯는 방법밖에는 없을 것 같습니다. 결국 조희문 교수의 지적처럼 "<용가리>의 포인트는 용가리라는 캐릭터이지 드라마는 아"닌 걸까요. 그렇다면 저는, 조희문 교수의 이 말씀에 대해서 감히 이렇게 말씀드리고 싶군요. "그 120억원짜리 캐릭터 상품 CF, 너무 길구 엉터리인데다가 재미도 없었습니다."

5.

어떤 분들은 "결과야 어쨌건 그 뜻은 좋았다"고 하실지 모릅니다. 조희문 교수의 말씀의 요지도 따지고보면 이것이죠. 그런데, 정말 그 뜻은 높이 사줄만한 가치가 있는 것일까요? 이미 '<쉬리>를 보고 나서'와 그 뒤의 논쟁에서 말씀드렸던 것입니다만, 도대체 저는 헐리우드를 '이기기' 위해서 짝퉁 헐리우드 영화를 만들어야 한다는 논리는 이해할 수 없습니다.

'영화인'들이 머리까지 박박 밀어가면서 박터지게 벌이는 스크린 쿼터 싸움. 그때마다 들려오는 구호, "문화주권 사수하자!"라는 구호는 도대체 무슨 의미로 외쳐지는 것일까요. 우리나라 사람이 등장해서 한국어 대사로 짝퉁 헐리우드 영화를 만드는 것이 그 분들께서 스킨헤드까지 해가며 사수하시려는 "문화주권" 인가봅니다. 그럼 일본 가요 열심해 표절해서(요즘은 이것도 한 단계 업그레이드 돼서 엥까 베끼면 표절, 팝 베끼면 작곡이 되더군요), 터무니없이 부푼 시장을 메꿔넣고 있는 가요판에서는 "문화주권"이 온전히 "사수"되고 있는 거로군요. '일본 방송국 한국 지사'를 자청하고 있는 한국의 쇼프로들은 "문화주권 사수"의 첨병이구요.

얘기가 좀 샜네요.. 어쨌든 아무리 좋게 봐 줘도 헐리우드 B급(그 중에서도 'B -' 급)인 영화를 만들어놓고, 이것이 한국 영화의 "전환점"을 만들었다고 하는 것은, 한국이 본격적으로 싸구려 짝퉁 헐리우드 영화를 양산해내는 '헐리우드의 마이너 리그'로 전환하는 "전환점"을 만들었다는 얘기로 밖에 들리지 않습니다.

또, 이동진 기자는 과연 조선일보 기자답게 " 해외에 잘 팔리기만 한다면 <용가리>는 성공작이 될 것이다"라고 했는데요, 이 논리(이걸 논리라고 부를 수 있다면) 또한 정말 이해할 수 없습니다. 물론 이동진 씨가 영구 아트무비의 회계사쯤 된다면 이런 애기를 할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제가 알고 있는 바로는 이동진 씨의 직업은 신문기자라고 알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무엇이 "성공"일까요. 세계 방방곡곡에 '한국 영화는 이렇게 엉터리랍니다'라는 것을 광고하는 것에 "성공"한다는 얘기일까요. 아니면 해외에서 <토마토 공격대(Attack of the Killer Tomatos)>에 버금가는 컬트 영화 대접을 받을 것을 미리 예상했던 걸까요.

6.

하지만 사실, <용가리>는 '영화'가 아닙니다. <용가리>는 굳이 말하자면, '실험적 코미디 퍼포먼스'입니다. 즉, 한 국가 전체를 코미디의 대상으로 삼은, 한 국가 전체가 코미디의 주인공으로 동참한 거대한 실험적 퍼포먼스죠.

"영화는 문화이자 21세기 지식집약형 산업이다" 등등의 얘기를 하시는 분들(요즘 높으신 어르신네 사이에서는 이 알쏭달쏭한 말이 유행인가 봅니다)은 어쩌면 <용가리>가 장사를 위해서 국가적 규모로 벌인 엄청난 판과 '프리 마케팅(pre-marketing)'이라는 새로운 해외시장 개척방법에 표를 던지실지도 모르겠습니다. 다 좋습니다. 영화도 돈을 벌어야 하니까요. 하지만 그 분들의 "영화는 산업이다"라는 슬로건이, 결과적으로 <용가리> 라는 대재앙을 낳았다는 사실을 주목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이 "영화는 산업이다"라는 슬로건을 금과옥조처럼 신봉하시는 분들, 우선 그에 앞서 "영화는 영화다"라는 당연하고 기본적인 명제를 확인해보셔야 할 듯 싶습니다. 영화가 영화다운 모습을 갖춘 다음에야, 그런 다음에야 비로소 그것은 "지식 집약형 국가 전략적 산업"일수도 있을 것입니다. 만약 우리가 <용가리>에 대한(그리고 영화에 대한) 논의에서 이 점을 빠뜨린다면, 또다시 이런 코믹한 퍼포먼스가 반복되지 않을 것이라고 그 누가 장담할 수 있겠습니까.

[덧붙여서]

<용가리> 명장면 베스트 5

1. 마지막, 지구와 인류를 지키려다 장렬하게 쓰러진 우리의 용가리가 헬리콥터에 당 당 당 당 매달려 날아가는 장면

2. 용가리가 서울(?) 시내에 우뚝 서 있는 건물을 두쪽으로 뽀개는 장면. 그 뽀개지는 건물 꼭대기에서 빛나는 "IMF"라는 글자에 주목하시길

3. 용가리가 '부활'했을때, 발굴현장 인부들이 용가리의 발을 피해 일렬종대로 질서정연하게 도망다니는 장면(<토마토 공격대>에 대한 오마쥬였을까?)

4. 미국(?)의 특수부대 요원들이 슈와왁!하고 인간 로켓티어로 변신해서 등장하는 장면

5. 사악한 외계괴수와의 사투끝에 승리를 거둔 용가리를 보고 환호하는 주인공들

(아쉽게도, '동평화 의류상가' 장면은 순위에 들지 못했습니다)


1999 7. 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