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mment   자칭 '<용가리> 3부작' 중 마지막 글. 다시 보니 '그 글, 참 길게도 썼다'는 생각과, '역시 시간은 모든 일을 평화로운 추억으로 변모시키는 법이다'라는 생각이 든다. 아, 용가리떼 노니는 푸르른 초원위에 새털 구름 한조각 두둥실 떠가누나.. 어쨌거나, 이 글을 마지막으로 1년 반 동안 글을 올렸던 씨네서울의 '영화를 보고 나서' 게시판을 떠나게 되었다.

 
정말 대단하군요. 글의 양도 그렇거니와, 뜨거운 감정이 절절하게 느껴지는 글들을 보니 저의 마음 또한 뜨거워지는 것 같습니다.

여기에, 저도 몇 말씀 더 드려야 예의가 될 것 같군요. 제가 "<용가리>를 보고 나서"를 올릴때 정작 하고 싶었던 얘기들을, 이제야 속시원히 말씀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우선 **님께서 올려주신 글을 중심으로 얘기를 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제가 <철인 사천왕> 얘기를 꺼낸 것은, <용가리>를 옹호하시는 분들의 대부분의 논지가 "7년동안 SF영화라는 어려운 길을 꾸준히 개척해서 어렵게 작품을 만들어 내놨는데 너같은 넘이 욕하면 되냐"는 내용이었기 때문입니다.

다시 한 번 분명히 말씀드리죠. 그런것은 영화 작품 자체를 평가하는 기준이 될 수 없습니다. CG와 SF에서의 새로운 시도라면 <용가리>가 처음은 아니며, 작품에 쏟는 노력과 마음고생 만하더라도 심형래 감독이 유일하지 않습니다. 만일 이런 이유로 영화를 호평해야 한다면 이 세상에 호평을 받지 못할 영화는 거의 없을 것입니다. 영화에 대한 평가는 우선, 영화 자체에 대한 평가에서 시작하는 것이 정상적인 순서가 아닐런지요?

그럼, 이렇게 말씀하실지도 모르겠군요. "<용가리>는 아이들의 눈으로 보아야 하는 영화다" 그런데, 저는 **님께서 '예전부터 <용가리>는 아이들을 위한 영화였다'라고 말씀하신 근거를 여전히 찾지 못하겠습니다. 상식적으로 납득이 가지 않는 것은, 상업영화에 있어서 그 영화가 공략할 타겟을 설정하는 것은 그리고 이것을 널리 알리는 것은 마케팅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인데, 심형래 감독의 이 영화의 마케팅에 대한 얘기들에서 "이 영화의 주요 공략 타겟은 어린이들이다"라는 내용은 어디에서도 찾아 볼 수 없다는 것입니다(**님께서 "언제 갑자기 용가리가 성인용으로 둔갑했는 지 모르겠군요"라고 하셨는데, 그건 <용가리>의 시사회가 있었던 날, 즉 처음으로 사람들에게 완성판이 공개된 14일 입니다).

**님께서는 심형래 감독이 TV나 특강에서 그런 발언을 했다고 하셨는데, 신문이나 잡지에서는 이런 중요한 얘기를 한 번도 하지 않았다는 것은 우연의 일치라고 하기에는 무척이나 이상하군요. 저도 나름대로 영화에 관한 프로그램이라면 놓치지 않고 보려고 하고, 심형래 감독이 출연한 "파워 인터뷰"를 보기도 했습니다만, 이런 발언은 한 번도 듣지 못했습니다(제가 인터뷰 중 제 논지에만 유리한 몇 부분만 가지고 꼬투리 잡은 것이라고 생각하신다면, 제가 아래 글에서 인용한 주간조선의 인터뷰 전문을 보시길). 제가 "다른 무엇에 결코 뒤지지 않는다"는 심형래 감독의 말을 액면 그대로 믿은 것이 잘못이라면 할 말이 없습니다.

그리고, 또 한번 상식적으로, 이 영화가 어린이 관객을 겨냥하고 있었던 작품이었다면, 광고라는 가장 대중적인 매체에서 그런 언급 한 마디 정도는 있는게 정상이라고 생각되는데요, "전 세계가 인정한 SF대작"이라는 카피 뿐 그러한 언급은 한 마디도 찾아볼 수 없습니다. 물론, 용가리, 사이커 등의 '대사없는' 괴수들을 제외한 나머지 등 장인물들 중 어린이들을 겨냥했다고 생각되는 캐릭터는 찾아보기 힘들다는 점을 생각하지 않더라도 말입니다.

그래도 못 미더우시다면 '제로나인 엔터테인먼트'에서 직접 배포한 홍보자료의 한 부분을 인용해 드리도록 하죠. <용가리> 는 "40대에게는 향수를 10대에서 20대는 가장 좋아하는 영화쟝르인 SF 영화로 온 가족이 함께 즐겁게 볼 수 있는 영화로 기획했다"

제가 여기에 대해 이렇게 문제제기를 하는 이유는, 심형래 감독 자신이 <용가리>를 헐리우드 SF 영화에 비해 손색이 없는 작품이 되도록 하겠다고 공언했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연유로, 저는 <용가리>를 "다른 무엇에 결코 뒤지지 않는" "SF 대작"일꺼라는 기대를 어느정도 하고 보게 되었고, "<용가리>를 보고 나서"라는 글을 남겼습니다.


백보 양보해서, '세비지'님의 말씀대로 이 영화가 "어린이를 위한 영화"라고 하구요, "세계시장의 어린이 영화들"과 견줄만한, (심형래 감독 자신의 말을 빌어)"다른 무엇에 결코 뒤지지 않는" 어린이 대상 영화이고자 했다고 합시다. 그럼 <용가리>의 완성도를 "ET"나 디즈니의 영화들과 비교해봐도 별로 문제가 없겠군요.

하지만 저는 그럴 생각은 조금도 없습니다. 그것은 부당하기(!) 때문이기도 하거니와, 그럴 필요도 전혀 없기 때문입니다. 이 영화가 더도 말고 덜도 말고 <스타 키드>만큼의('보다'도 필요 없습니다) 기초적인 완성도를 지키고 있었다면, 저는 "<용가리>를 보고 나서"에서, 이 영화에 대해 최소한의 예의를 갖출 용의가 있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용가리>를 보고 나서"에서 말씀드렸듯이, 이 영화는 그 정도의 기본적인 예의 - 제가 얘기하는 "관객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라는 것을 지키 는데, 엄청난 돈이나 기술력이 필요한 것은 결코 아닙니다 - 도 지키지 않은 영화였습니다. 아마도 많은 분들의 뚜껑을 열리게 했을, 저의 "불량식품"이라는 표현은 이러한 의미에서 쓰였습니다.


하지만 다 좋습니다. 이런 영화 한 편 만들어졌다고, 그리고 그걸 봤다고 뭐 큰일나는 것은 아닐겁니다. 게다가 어차피 저는 호기심 때문에라도 이 영화를 보았을테니 '돈 아깝다'는 식의 불평을 늘어놓을 생각도 전혀 없습니다. 물론 배가 아파서 심형래 감독이 잘되는 꼴을 못본다는 식의 얘기(이런 얘기가 멀쩡한 일간지에 실리다니 기가 막힙니다)에 는 대답할 가치조차 못 느낍니다.

제가 정작 <용가리>에 대해 문제삼고 싶은 것은, 이 영화가 한 편의 '영화'로서 홍보되고, '영화'로서 보여지는 것이 아니라는 점입니다. 아래, 제 글에 대해서 반박 커멘트를 붙이신 분들, 그리고 이 영화를 옹호하시는 분들의 글 중에서 영화 자체의 완성도가 뛰어나기 때문에 제 글이 "싸가지없는" 글이라고 말씀하시는 불행하게도 단 한 분도 안계시는 것 같습니다.


아래, <용가리>를 옹호하시는 분들의 얘기를 몇 가지로 요약/정리해보면,

① 잘난 척하기 좋아하는 넘이 알지도 못하면서 까분다
② 심형래 감독님이 한 길 걸어 힘들게 <용가리>를 내놨는데, 감히 "싸가지"없이 욕을 한다
③ 신 지식인 된게 어디 심형래 감독 잘못이냐? 정부에서 시킨거지
④ <용가리>가 돈 많이 벌기만 하면, 너 같은 넘의 얘긴 완전 헛소리가 될꺼다
⑤ <용가리>가 망하면 한국영화가 공멸하는데, 니 얘기 같은 건 전혀 도움이 안된다

등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우선 첫번째 이야기에 대해서는 별로 대답할 이유를 못 느낍니다만, 이것 한가지만 짚고 넘어가겠습니다. 이 ①번 주장의 좀 그럴듯해 보이는 변형이 "예술영화나 좋아하는 인간들의 눈에는 <용가리>가 우습게 보이겠지만.."식의 주장인데요, 이렇게 말씀하시는 분들께서는 제가 이런저런 이유로 호의적으로 봤던 <또또와 유령 친구들>, <식스 데이 세븐 나잇> , <링>, <호스 위스퍼러>같은 영화들을 '예술영화'라고 부르시는지요? 제 글을 읽는다는 것 자체가 화나시는 분들은, 아래 <용가리>를 비판하시는 분들의 글들을 읽어보시길. 아래 글들 중 <용가리>가 예술성이 부족하기 때문에 문제가 있다고 하신 분이 계신지요?

두번째 주장에 대한 생각은 앞의 글에서 이미 말씀드렸습니다만, 조금 더 와 닿으실 내용으로 다시 말씀드리겠습니다. 또 한 번, 백보 양보해서, 우리가 심형래 감독의 노고를 생각해서라도 <용가리>를 비판해서는 안된다고 합시다. 그 노고만으로도 <용가리>는 의미가 있다고 칩시다. 그럼, '세비지'님께서 지적해신대로 "용가리는 국내보다 국제적인 관심을 먼저 끌면서 등장했"으니, 이 영화가 해외 수출되어 한국이 아닌 곳에서 상영되는 경우를 생각해 보면 어떨까요? 저는 해외의 관객들이 과연 "7년 동안 한국 SF의 발전을 위해 한 우물만 파온 심형래 감독이 과로로 입원까지 해가며 만든 영화"라는 이유만으로 <용가리>를 기꺼이 훌륭한 작품으로 받아들여줄지에 대해 의문이 듭니다.

세번째 주장의 근거가 된, "그 잘난 신 지식인 1호"라는 부분은 여러분께서 투표해주신 '가장 뚜껑 열리는 발언 1위'에 랭크된 얘기죠. 우선 "그 잘난"이라는 수식어는 "심형래 감독"을 수식하는 것이 아니라, "신 지식인"을 수식하는 말임을 말씀드려야 겠습니다만, 얼마든지 "심형래 감독"을 수식하는 단어로 오해할 수 있는 여지를 남겼기 때문에, 이 부분의 저의 실수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것은 저의 잘못입니다. 이것이 감독에 대한 결례가 되었다면 사과드리고, 이런 뜻이 아니었음을 해명 드립니다.

하지만 <용가리>를 '뜨게' 만든 가장 결정적인 광고인 '신 지식인' 광고에 대해서, 심형래 감독이 "정부에서 시키는 대로만 했을뿐이야"라고 강변하기만 하는 것은 옳지 못합니다. 이 광고에 출연한 이유에 대해서는 심형래 감독 자신이 "영화 개봉을 앞두고 그런 홍보를 마다할 사람이 어디 있는가"라고 했습니다. 이 공익광고가 직접적으로 자신의 영화 홍보(적어도 간접적으로)가 될 것을 염두에 두고 출연했다는 이야기입니다. 물론 결과적으로 특정 영화를 홍보를 한, '공익광고' 아닌 '공익광고'를 만든 한심하기 짝이 없는 정부 시책에 그 일차적인 책임이 있겠습니다만, 심형래 감독도 작품의 완성도에 대해 충분히 자신이 있었고, 구설수에 휘말리지 않으면서 흥행에 승부를 걸고 싶었다면 이 광고의 출연은 신중하게 고려했어야 옳았습니다.

한 가지 고백하자면, 제가 그 '신 지식인(이것이 정확히 무슨 기준으로 선정되는 것인지, 누가 선정하는 것인지는 알쏭달쏭할 뿐입니다만)'이라는 타이틀에 거부감을 느끼게 된 가장 큰 계기는 99년 4월 23일자 동아일보에 실린 심형래 감독 인터뷰 중 아래의 내용 때문이었습니다.

"동아일보(김희경 기자) : <용가리>의 그림은 좋지만 스토리가 문제라는 말도 있다.

심형래 감독 : 웃기는 얘기다. 할리우드 대작인 <고질라>의 스토리를 봐라. 돌연변이 괴물이 뉴욕에 나타나 싸돌아다니다 알낳고 죽는 거다. 간단하다. 할리우드에도 '스토리를 한 문장으로 요약할 수 없는 영화는 흥행에 실패한다'는 말이 있다."

제게는 이 발언은 거의 경악이었습니다. 저는 이 발언에 절대 반대합니다. <고질라>의 가장 큰 실패요인은 무엇보다도 부실한, 아니 아예 없다시피한 스토리라는 것은 누구도 부인하지 못하는 사실일 것입니다. 이 영화가 그 뻑적지근한 특수효과와 홍보에도 불구하고 개봉 당시 서울에서 40만 관객밖에 모으지 못했다는 것(관객수가 영화의 완성도를 입증하는 척도일 수는 없음을 여기서 미리 얘기해둬야 겠군요)이야말로 "세계 시장을 개척"하겠다는, 그리고 "5년 내 헐리우드를 정복"하겠다는 포부를 당당히 밝힌 심형래 감독이 가슴에 새겨둬야 했을 교훈이 아니었을까요.

게다가 헐리우드와 단순비교 할 수 없는 자본력과 특수효과 기술을 가지고 있는 우리나라에서는 더군다나 말입니다. 심형래 감독 자신도 같은 인터뷰에서 이러한 얘기를 하지 않았습니까. "영화는 아이디어로 승부하는, 가장 바람직한 무공해 산업아닌가"

더군다나 스토리 대신 특수효과로 승부를 걸어, "헐리우드를 능가"하는 "세계를 겨냥해 남녀노소 국적을 불문하고 누구나 즐길 수 있는 영화를 만들 작정(위 동아일보 기사에서 인용)"으로 만든 <용가리>의 특수효과는 그 "헐리우드"에 비교해서 너무나 초라합니다(많은 분들이 <용가리>를 헐리우드와 비교하지 말라고 하시는데, 이 비교를 자청한 것은 심형래 감독이었다는 것을 다시 한 번 말씀드립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이런 비교가 옳지 못하다고 생각합니다만).

그리고 네번째와 다섯번째 주장은 한꺼번에 얘기해 보도록하죠. 이러한 '돈 벌면 모든 것이 용서된다'는 식의 주장이야말로 감상적인 국가주의와 함께 지금 우리나라를 지배하고 있는 생각이 아닌가 합니다.

그런데, 과연 <용가리>가 돈을 벌고, 해외에 수출계약을 많이 하면 한국의 영상산업이 발전할까요? 국내, 국외할 것없이 우리는 그렇게 장미빛 미래만 그리고 있을 수는 없을 것 같습니다. 우선 국내의 사정을 보도록 하죠. 두 가지 전제가 있습니다. 첫째, 점점 규모가 커지고는 있습니다마는, 우리나라 영화 시장의 규모로 보건데 국내에서 영화에 투자되는 돈은 한정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둘째, 배경과 소품을 보아하니 삼성에서 <용가리> 에도 꽤 돈을 댄 것 같은데, 당장 돈이 안 될 것 같으니까 '삼성 영상 사업단'을 퇴출 1순위에 올려놓았다가 <쉬리> 가 흥행에 성공하고 나니까 슬그머니 퇴출안을 철회한 삼성의 높으신 어르신네들의 영화에 대한 천박한 이해를 근거로 생각해보면, <용가리>의 상업적 성공은 그 분들에게 '역시 판은 크게 벌이고 볼 일'이라는 생각을 심어주기에 충분할 것입니다(여기에서 "판"이란 자본의 규모만을 얘기하는 것은 아닙니다. 뒤에서 얘기하겠습니다).

그렇다면 그 한정된 자본이 몰릴 곳이 어딘지는 짐작할 수 있습니다. '판을 크게 벌일' 능력이 있는 제작자나 감독들의 영화죠. 상대적으로 '장사가 안되는' 영화를 만드는 사람들은 자본이나 배급망을 타기는 점점 어려워질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가 그토록 "능가"하기를 원하는 헐리우드의 경우를 보더라도, 그들은 끊임없이 인디(independent) 영화들에서 자양분을 획득하고 있습니다. 파이가 커지면 여러 사람에게 돌아갈 몫이 많아진다는 얘기는 지금까지의 경험으로 미루어 볼때 희망 사항일 뿐이 아닐까요?

하지만, 또 한번 백보 양보해서, 그따위 돈 안되는 영화에 돈이 가느니 몇 편의 '큰' 상업영화들에 자본이 모이는 것이 좋다고 칩시다. 그렇다면, 문제는 이것입니다. <용가리>가 그렇게도 노력해서 성취한 특수효과의 수준으로 볼 때, 그렇게 만들어진 영화들이 당분간은(최소한 심형래 감독이 공언한 "5년안"에는) 헐리우드 영화의 특수효과의 완성도를 따라잡기 힘들 것입니다(헐리우드에서도 우리가 "능가"해 줄때까지 놀고만 있지만은 않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투하된 자본과의 수지타산을 맞추려면, 영화는 수출이라는 판로를 확보하는 수 밖에 없는데, 헐리우드와 비교해서 잘해야 B급 영화라고밖에 할 수 없는(다시 한 번 헐리우드 출신의 B급 아동용 SF영화 <스타키드>를 상기시켜 드립니다) 영화들을 수출한다면 그 결과는 어떻겠습니까? 그렇게 수출된 영화가 상영된 나라에서는 우리가 '홍콩영화'하면 떠올리는 이미지 바로 그것을 한국에 대해서 느낄 것입니다(아니, <용가리>의 완성도를 볼 때 그 정도라도 될지 무척 의문스럽습니다). 그런 일이 반복된다면, 한국 영화의 가치는 해외시장에서도 점점 떨어질 것이고(지금의 홍콩영화들이 우리나라에서 겪고 있는 운명), 그 때 한국 영화계는 그 공백을 대체할 어떤 소프트웨어도 제시하기 힘들 것입니다. 왜냐하면 영화적인 기반이 제대로 갖춰져 있지 못한 상황에서, 사상누각과도 같은 규모만을 추구했기 때문이죠.

그런데, 어떻게 '<용가리>가 망하면 한국영화가 공멸한다'는 식의 예언을 하시게 되셨는지요? 어떤 근거로 이런 예언이 가능한 것입니까? "<용가리>가 무너지면 한국 의 영상산업이 무너진다"는 심형래 감독님의 '선언(이것은 분명히 어떠한 근거도 제시되지 않은 선언일 뿐입니다)' 덕분인가요. 저 개인적으로 그 당당한 예언자적 자세와 배짱에 무척 감명을 받았습니다만, 그와는 별개로 이 주장이 근거없는 '주장'일 뿐이라는 생각에는 변함이 없습니다.


이제, 제가 "<용가리>를 보고 나서", "<용가리>를 보고 나서 (2)", 그리고 이 글까지, 세 부분으로 나누어서 올린 글의 결론을 말씀드리겠습니다.

지금까지 보아오건데, <용가리>에 대한 옹호는 <용가리>라는 '영화'에 대한 옹호가 아니었습니다. 보지도 못한 <용가리>에 대해서 "우리의 자랑스러운 용가리를 욕하지 말라!"는 메일이 오는 것, 또는 "나는 한국영화의 승리를 위해서 용가리를 보러 갈 것이다"라는 글이 올라오는 것, 제시된 사실은 무시하고 "용가리는 원래부터 어린이용 영화였다"는 근거없는 주장을 되풀이 하는 것, 여기에 '어린이 관객을 인터뷰하니까 좋아하기만 하더라'는 주장을 하는 것, <용가리>를(정확히 말하면, <용가리>의 기본적인 완성도를) 비판했다는 이유로 "매국노" 등의 발언이 서슴없이 나오는 것 등등 말입니다.

아무리 생각을 해 보아도 이것을 어떤 영화에 대한 반응으로만 받아들이기에는 무리가 있다고 느낍니다. 이것은 <용가리> 가 의도적이건 아니건, 지금까지 교묘하게 자극해오고, 키워왔던 감상적 국가주의가 상처받았기 때문에 온 반응이라고 밖에 달리 생각할 길이 없습니다. 제가 예전에 <쉬리>를 비판했을때 올라왔던 반응들을 보고 이런 징후를 느끼긴 했었습니다만, <용가리>를 계기로 이것이 이렇게도 명백하고 노골적인 모습으로 드러날 줄은 미처 생각하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저는 이런 <용가리>와 제 글에 대한 반응들을 보고 막연하게 '이건 분명히 뭔가하고 닮았는데.. 뭔지 모르겠네..'하고 아리송해하던 중이었는데요, ###님께서 제 글을 읽고

"우리 나라 월드컵 대표팀을 생각나게 하는 비유군요.
본선 예선 마지막 벨기에 전에서 비록 비겼지만
국민 모두가 박수를 보낸 이유가 뭘까요?"

라는 글을 올리신 걸 읽고, 그것이 무엇과 닮았는지 알게 되었습니다.

저는 매우 당연하지만 그리 대중적이지는 않은 것 같은 말씀을 드리고자 합니다. <용가리>는 월드컵 경기와는 다릅니다. <용가리>는 국가 대항 축구 경기와는 분명히 다른, 한 편의 상업영화입니다. 그리고 상업영화에 대해서는 상업영화에 상응하는 반응을 보이는 것이 정상적인 영화 관객의 행동일 것입니다. 더군다나 심형래 감독이 공언한대로 <용가리>가 하나의 문화 상품으로 만들어졌다면, 그 품질에 대해서 얘기하는 것이 정상적인 '소비자'의 반응이 아니겠습니까

하지만 <용가리>에 대한 논의는 그로부터 한참을 벗어나 있습니다.

저는 처음부터 '해외시장 공략'이라는 모토를 전면에 부각시켜서, IMF 체제 이후 특히 두드러지기 시작한 감상적 국가주의로 상업 영화 한 편을 '구국의 횃불'로 포장해 낸 심형래 감독의 마케팅 전략과 두둑한 배짱에 경의를 표합니다.

하지만 이 전략의 가장 취약한 점은, 이것이 당분간(정말 당분간이기를 바랍니다), 그것도 국내에서만 통할 수 있는 임시방편일 뿐이라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