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우등>을 보고 나서


1.

"붕어빵에 붕어없고, 독립영화에 독립군 안 나온다."
뭐, 독립영화계에서는 조크랄 것도 없는 클래시컬 조크지만, 필자는 실제로 독립 영화가 일제시대 독립군의 항일투쟁을 그린 영화라고 생각하는 분들을 심심찮게 만났었다.

물론, 요즘에는 이런 분들을 만나는 건 쉽지 않다. 이것은 우리나라의 독립영화들이 잊을만 하면 해외 영화제에서 상을 타와서 '독립영화'라는 말에 무척이나 인색한 매체들을 괴롭혔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보다는 헐리우드 영화의 디저트처럼 딸려오는 미국의 '인디(independent) 영화'나 헐리우드에서 대성한 '인디 영화' 출신 감독들의 입지전적 성공담 덕분일 것이다(그 중 일등공신이라면 아마도 로버트 로드리게즈겠다).

덕분에, 우리에게 '독립영화'는 미국의 '인디영화' - 간단히 말해서 메이저 스튜디오와 독립된 자본으로 만들어진 영화 - 쯤으로 이해되고 있다. 하지만 적어도 우리나라에서 '독립영화'란 말의 뜻은 그리 단순하지만은 않은 것 같다. 오랜 산고끝에 올 초에 출범한 '한국 독립영화협회(이하 독협)'의 창립 선언문이 "독립영화는 무엇인가?"라는 질문으로 시작되는 것만 봐도 말이다.

이 해묵은, 그리고 무거운, 그리고 누구도 선뜻 해답을 내놓지 못하는 "난처한" 질문이, 김시언 감독의 16mm 장편 <하/우/등(夏雨燈)> 덕분에 다시 필자의 머리 속에서 고개들 쳐들었다.

2.

신문 광고에서도 "7월 3일, 영화가 독립합니다"라는 카피를 사용하는 것을 보면, <하/우/등>은 독립 장편영화라는 '출신성분'을 것을 자신의 가장 큰 홍보전략(=관객들이 이 영화를 보아야 할 이유)으로 삼은것 같다. 그렇다면, 이 출신성분이 과연 옳은 것인지 따져볼 필요가 있을 것 같다. 그럼, 그 출신성분은을 독립영화계에서 통용되고 있는 세 가지 기준 - ① 자본으로부터의 독립, ② 검열로부터의 독립, ③ 주류문법으로부터의 독립 - 으로 살펴보는게 가장 그럴듯하겠다.

이 영화에 대해서 '자본으로부터의 독립'은 뭐, 별로 물을것도 없을 것 같다. 프랑스에서 유학을 마치고 돌아온 김시언 감독이 사재를 털어서 만든(아마도 대부분의 독립영화 감독들이 그렇듯 주위의 친지들과 친구들을 꽤 괴롭혔겠죠?) 영화라고 하니, 자본으로부터 정말 '독립'한 영화임에는 틀림없는 것 같다. 오히려 그 '독립' 때문에 어려웠던 경우가 훨씬 많았을 것이다. 물론 그 어려움을 감수한 대신, 충무로 상업영화와 비교가 안될 정도의 자유를 얻을 수 있었겠지만.

'검열로부터의 독립' 또한 전혀 문제가 아니었던 것 같다. "노골적이고 퇴폐적인 성적 묘사로 미풍양속을 해칠 우려가 있"기 때문에 내려진 심의반려 판정이 어떤 광고보다도 효과적인 광고가 된다는 것을 일찌감치 간파한 <노랑머리>의 영악함은, <하/우/등>에게는 아예 불가능한 얘기다. 이 영화는 '모든 연령에서 관람할 수 있는' 등급이라니 더 얘기할 필요 없겠다.

3.

결국 초점은 <하/우/등>이 '충무로 영화들에서는 쉽게 볼 수 없는 뭔가를 가지고 있는 영화인가?'에 모아지게 되는데, 가장 중요한 이 질문에 대해서는, 안타깝게도 답이 그리 쉽게 나오지 않는다.

<하/우/등>이 떼돈 벌려고 만든 영화는 아니라는 걸 눈치채긴 어렵지 않다. 스타도 아닌 젊은 남자 배우 셋, 여자 배우 셋이 나온다. 영화는 내내 폐교된 시골분교 안에서만(!) 촬영된다. 오히려 등장인물들의 후덥지근한 하루하루는 관객마저 폐교안에 가두어둔다. 특출나게 재밌거나 기발한 얘기가 나오는 것도 아니다. 기복도, 반전도 없이 '여름(夏)', '비(雨)', '등(燈)'과 연관돼 있는 에피소드들이 연결된다. 그렇다고 위험수위를 넘나드는 사회적 발언이 있는 것도 아니고, 사회적 금기를 다룬 것도 아니다.

그럼, 당연히 이런 질문이 나오게 된다. 감독은 무엇 때문에 사재를 터는 위험을 감수하고, 시골 폐교에 50일 동안 갇혀있기를 자청하면서 '독립'을 하고싶어 했던걸까? 그 답을 내리는 것이 쉽지 않다는 것이다. 이 영화 최고의 강점이랄 "여백이 있는 수채화같이 아름다운 화면", 충무로에서 만들수 없는 것도 아니다. 스타가 아닌 개성있는 배우들을 기용하기 위해 독립제작 방식을 택한것도 아닌것 같다. 이 영화의 배우들은 개성과는 거리가 멀어도 한참 멀고, 외려 '좀 안 유명한 모델'들 같아보이니까 말이다(설상가상으로 연기마저 좋지 않다). 게다가 감독은 한시간 반이 넘는 러닝타임을 감당해내지 못하는 것 같다. 이 무리한 러닝타임이 반 정도로 줄었다면 아마도 이 영화는 훌륭한 '소형/단편'영화가 되었을지도 모른다.

어쨌든, 아무리 생각을 해봐도, (좀 심하게 말해서)자기도취적인 지루함과 풋내 빼고는 이 영화가 충무로에서 만들어질 수 없었던 또는 충무로에서 만들어지지 말았어야 할 이유를 찾아낼 수가 없다.

4.

독협의 창립선언문에 적혀있는 것처럼, '독립영화'에서 '독립'은 검열을 거부하고 자본을 적게쓰는 일을 의미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독립영화'라는 깃발 하나만으로 무언가 특별한 영화가 만들어지는 일은 없다. 이 '독립영화'라는 깃발은 충무로 시스템에서는 만들어질 수 없는 무엇인가를 보여주는, 그리고 그것을 지키기 위해 어려움들을 감내해가며 주류와 타협하지 않는 영화들을 위한 것이다. 적어도 '독립영화보다도 더 독립영화같은' 영화들(가장 좋은 예로 홍상수 감독의 영화들)이 충무로에서 만들어지고 있는 현재 우리나라의 상황에서는 그렇다.

이제, 우리나라 독립영화인들에게 주어진 숙제는 작품외적인 '논리'가 아닌 '작품'으로 자신의 존재근거를 만들어가는 일인 것 같다. 스크린쿼터 문제에 대해 감상적 민족주의를 자극하는 눈물의 신파극으로 일관하고 있는 충무로와 주류언론의 실천적 파산상태를 답습하지 않기 위해서는 말이다.

[덧붙여서]

<하/우/등>이라는 작품이야 어찌되었던, 한국의 독립/단편 영화들을 배급함으로써 관객들에게 새로운 영화를 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려 노력하고 있는 '미로 비젼(이 영화의 배급사)'의 시도는 충분히 지지할 만한 일인 것 같다. 독립영화(사실은 대부분 단편영화들이 될테지만) 배급에 꾸준히 관심을 보인 '백두대간' 같은 제작/배급사들의 간헐적인 노력도 덕분에 활성화 됐으면 하는 바램이다. 그리고 나아가서, 독립/단편영화 전용 상영관 같은 것도 생긴다면 얼마나 좋겠는가.

물론, 이런 시도의 성공에 있어 가장 중요한 관건은, 그 공간에 걸맞는 좋은 영화들이 얼마나 나와주는가와, 우리 관객들이 얼마나 이 '새로운' 영화들에 마음을 열어주는가 이겠지만.

1999 7.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