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워즈 에피소드 I : 보이지 않는 위험(Phantom Menace)> 을 보고 나서




아나킨 스카이워커 : "하지만 제다이는 죽지 않잖아요?"
콰이곤 진 : "꼭 그런 것만은 아니란다"
                                  - <스타워즈 에피소드 I> 중에서

 

미국 개봉 사실이 뉴스에서 보도되는 영화. 내부 수리한지 1년도 안된 극장의 멀쩡한 사운드 시스템을 뜯어버리게 만든 영화. 버스 옆구리에서 자신만만한 영어 카피로 광고하는 영화. "드디어 예매를 시작합니다"라는 신문광고를 가능하게 하는 영화. >아직 영화를 보지도 못한 관객들을 논쟁하게 만드는 영화. 그리고 3주만에 박스 오피스 1위 자리를 내준것 마저도 뉴스가 되는 영화.

덕분에 <스타워즈 에피소드 I : 보이지 않는 위험>은 한국의 관객들에게는 개봉되기도 전에 김빠져버릴 위기에 처한 영화가 되었다.

"2시간 짜리 화려한 예고편"에서 "미국인들의 정신적 공황의 단적인 예증"까지 그 무수한 평가(아니, 혹평)는, <스타워즈> 시리즈의 팬들에게는 <에피소드 I>에 대한 평가는 '예기치 못했던 몰락'을 알리는 불길한 전주로, 조지 루카스의 오만과 '일개 SF 영화'에 대한 과대평가가 짜증스러웠던 사람들에게는 '예고된 몰락'이라는 예언의 실현으로 들릴 법도 하다.

1. 스토리

우선 <에피소드 I>에 대한 언론의 글들을 읽어보면 '스토리가 허술하다'는 식의 얘기가 가장 많은 것 같다. 근데, 사실 말이지 언제 <스타워즈>의 스토리가 치밀했던 적은 있었나? 물론 "지금까지 모두 엉터리에 말도 안되는 줄거리였다"는 식의 얘기를 하려는 건 아니니깐 <스타워즈> 팬 여러분, 핏대 세우지 마시길 바란다. 필자도 <스타워즈>의 각 편을 5번 이상 본(물론 극장에서 본 횟수는 빼고), 여러분 못지않은 열렬한 <스타워즈> 팬이니까 말이다.

어쨌거나, <스타워즈> 시리즈의 스토리는 우리 '지구인'의 사고방식으로는 이해가 잘 안가는 이상한 내용 투성이였던 것이 사실 아닌가. <에피소드 I>의 줄거리의 뼈대는 그런 면에서 보면 얼마든지 납득할 수 있다. 이전보다 더 그럴듯해진 것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더 허술해지지도 않았다는 면에서 말이다.

정작 문제는 다른 곳에 있다. 문제는 오히려, <에피소드 I>이 지구인들(특히 성장한 지구인들)에게 그럴듯하게 느껴질 스토리를 만들려고 너무 애썼다는 점이다. 우주적인 규모의 우연성과 낭만이 지배하는 줄거리를, 아무것도 거리낄 것 없다는 듯이 "우주의 평화", "악의 힘", "포스가 너와 함께 할 것이다"등등의 태권 V스러운 대사로 입심좋게 풀어내던 조지 루카스의 유쾌한 배짱은, 애석하게도 실종됐다. 그리고 더욱 애석한 것은 그 자리를 딱딱하고 재미없기 그지없는 정치(?) 이야기들이 메우고 있다는 것이다. '자자 빙크스Jar Jar Binks'와 함께, 이것이 <에피소드 I> 최고의 패착이다.

<스타워즈> 의 팬들이 보고 싶어 했던 건, 복잡한 무역로 분쟁이나 그걸 가지고 논쟁을 벌이는 의회 같은 것은 아니었다. <스타워즈> 의 관객들(물론 지금은 3, 40대 아저씨가 된 예전의 어린이 관객들도 포함)은 이런 지루한 '정치적 배경'에 대한 설명 없이도, '선과 악의 대결'이라는 만능 열쇠같은 한 마디만으로도 그들의 싸움에 즐거운 마음으로 동참할 준비가 되어있다는 걸 조지 루카스는 어쩌다가 잊은 걸까. 그 보무도 당당한 순진함이 <스타워즈> 의 가장 큰 매력이었던걸 어쩌다 잊은 걸까.

그 무대가 우주라는 환상에서 지구라는 현실로 추락해버린 <에피소드 I>은, "머나먼 옛날, 은하계 저 멀리에서(A long time ago in a galaxy far, far away...)"에서 벌어지는 SF 판타지라기 보다는, SF 액션이 가미된 재미없는 <벤허>에 가까와 보인다.

2. 캐릭터

이것도 스토리 못지 않게 <에피소드 I>의 문제로 제기되어 왔던 부분인데, 확실히 콰이곤 진(리암 니슨 분), 오비완 케노비(이완 맥그리거 분), 아미달라 여왕(나탈리 포트만 분)같은 주연급 캐릭터들은 줄거리라는 기계를 움직이기 위해 요령좋게 조립돼 있는 부품에 가까와 보인다. 이것 또한 애석하지만 사실입니다. 오죽하면 리암 니슨이 이 영화를 찍고나서 "영화 배우는 감독의 꼭둑각시에 불과하기 때문에 더 이상 영화에는 출연하지 않겠다"라는 선언을 했을까. 오죽하면 <스타워즈> 출연이 일생일대의 꿈이었던 이완 맥그리거 역시 "허공에 칼질해대는데는 지쳤다"는 얘기를 했을까.

<새로운 희망> 에서 레아 공주가 츄바카를 보고 핸 솔로에게 내뱉던 "이 걸어다니는 카펫(walking carpet) 다른 데로 좀 치워줄 수 없어요?"같은 유머가 과연 루카스가 만들어 냈던 것이 맞나하는 의심이 들 정도로 <에피소드 I> 의 대사는 멋대가리 없다. 이런 독설적인 유머를 거침없이 구사하던 레아 공주나, 바닷사자 울음 소리(?)로 인생의 희로애락을 모두 표현하던 츄바카 같이 개성있는 캐릭터들도, 그 재밌던 대사와 함께 사라진 것은 물론이다.

그럼 "이번 프로젝트는 이전 보다 유머를 더 많이 가한 축제같은 분위기가 될 것이다"라던 조지 루카스의 호언장담은 어디로 간 걸까.

그 호언장담을 한 몸에 구현하고 있는 캐릭터가 바로 디지털 기술로 태어난(그럼 츄바카를 탄생시킨 기술은? 당연히 봉제기술) 이 문제의 '자자 빙크스'라는 캐릭터다.

혹시 <제 5원소>를 보셨는지. 그럼 영화내내 브루스 윌리스를 따라다니면서 시종 웃기지도 않은 껄렁한 개그를 들이붓던 '루비(크리스 터커 분)'라는 캐릭터를 기억하시는지. '자자 빙크스'는 이 '루비'보다 훨씬 재미없게, 그리고 수다스럽게 부도난 수표같은 유머를 남발한다. 그것도 아주 열심히, 그리고 진지하게 관객들에게 줄거리를 전하고 검투 액션을 보여주는데 최선을 다하고 있는 두 제다이 옆에서 말이다.

오죽하면 "자자 빙크스는 죽어 마땅하다Jar Jar Binks Must Die"라는 제목의 사이트 들이 속속 만들어지고 있을까(어제 보니 이 제목으로 랩 송까지 만들어진걸 목격했다. 이 거 한 번 구해다 들어봐야 할텐데..). 아닌게 아니라 사실 이 자자 빙크스가 앞으로도 계속 나올꺼라는 생각을 하면 <에피소드 II>, <에피소드 III> 까지도 미리 정나미가 떨어진다..

자, 자, 아무리 그래도, 고개들어 밝은 면을 보도록 노력해보자. 그래도 웬만한 영화라면 마음이 끌리는 그런 등장인물이 한 명쯤은 있기 마련인데, 이 영화에서는 아나킨 스카이워커(제이크 로이드 분)가 그런 매력을 가진 인물이다. 8살 짜리 어린애답지 않은 아나킨 스카이워커의 카리스마는 필시 컴퓨터 게임으로 리메이크 될 것이 틀림없는(이미 됐나?) " 벤허의 전차 경주 : 우주 버전"에서의 멋진 조종술 때문만은 아니다.

<영웅본색 3> 이 주윤발의 바바리 코트와 선글래스에 얽힌 사연을 관객들에게 팬서비스 했듯이, <에피소드 I>도 몇 가지 '출생의 비밀'들을 서비스한다. 여기에서 C3PO, 루크 스카이워커, 레아 공주의 창조주가, 그리고 죽음의 별death star에 죽음을 안기던 루크 스카이워커의 조종술의 원조가 바로 아나킨 스카이워커라는 것이 밝혀진다. 즉, 이 꼬마에게는 다스 베이더의 길쭉한 그림자 뿐만이 아니라, 창조주의 후광도 함께 덧씌워져 있는 것이다. '선과 악이 공존하는 어린애' 아나킨 스카이워커는 이렇게 만들어져 있다.

이렇게 본다면, 그의 위험스러워 보이는 매력 역시 <에피소드 I>이 만들어낸 것은 아니다.. 그럼 조지 루카스는 도대체 무엇을 만드려고 16년 동안 뜸을 들인걸까? 아마도 그 답은..

3. 비쥬얼

일 것이다.

뭐 새삼 말할것도 없지만, 이 영화의 비주얼은 훌륭하다. 단순히 특수효과가 멋있다는 정도의 의미가 아니라는 건 굳이 언급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이 영화의 훌륭한 '시각 디자인'은 "아트 디렉터 조지 루카스"라는 말까지 만들어냈을 정도니까. 과연, 이 영화의 이국적인(물론 서양인들의 시각에서) 의상과 분장, 그리고 각종 드로이드droid와 탈것들의 디자인은 공을 들인 흔적이 역력하다.

루카스가 그리도 갈망해오던 디지털 기술이 실현시킨 이 훌륭하고 기발한 캐릭터, 우주선, 전투기, 드로이드, 의상, 세트 디자인은 확실히 눈을 즐겁게 해주기에 충분하다. CG로 만들어낸 자연스러운 움직임과 엄청난 디지털 사운드에 대해서도 굳이 주절거리지 않겠다(물론 그 CG가 너무 CG같아 보인다는 단점도 있긴 하지만). 만약, 우리가 <터미네이터 2> 이후에 인간들을 대체하기 시작한 디지털 캐릭터들을 접하지 못한 상태에서, 이 영화를 보았다면 이 영화는 분명히 엄청난 센세이션(그리고 그 이상)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모든 신화(Saga)에 '시작'은 있을지 몰라도, '만약'은 없는 법. 지나친 디지털에의 의존은 조지 루카스의 또 하나의 패착이다. 필자는 <에피소드 I>을 보고 나서야 비로소, 제임스 캐머론이 <타이타닉>을 찍기 위해서 왜 세트들을 무식하다할 정도의 돈을 퍼부어가며 만들었는지를 깨닫게 되었다. 캐머론이 노린건 오로지 의도적으로 관객을 압도하는 것이었다! 당시를 그대로 재현한 '리얼리티' 따위를 위해 그 어마 어마한 세트를 만든게 아니었던 거다(역시 제임스 캐머론은 "나는 왕이다!"라며 큰소리 뻥뻥칠만한 자격이 있는, 영리함의 소유자).

결과적으로, <타이타닉>이 디지털로 만든 장면마저도 실사로 느끼게 만드는데 성공했다면, <에피소드 I>은 그 반대에 성공했다. 그리고 (그것에 드는 실제 비용이나 난이도와는 관계없이) 이미 머릿속에 '디지털 SFX 정도는 헐리우드 영화의 기본'이라는 생각이 자리잡기 시작한 지금의 관객들에겐, <스타워즈> 시리즈가 상다리 휘어지도록 차려온 디지털 잔치상이 실속없어 보일 수 밖에 없는 것이다.

그리고, 이 '차린건 많지만 먹을건 별로 없는' 잔치상은, 조지 루카스는 언제나 한 발 앞서있다고 믿어 의심치 않아왔던 관객들에게 실망을 안길 수 밖에 없는 것이다.

4. 공간

뭐, 이제는 새삼 말할 필요도 없다고 생각되지만, <에피소드 I>의 공간("은하계 저 멀리") 역시 이전과는 많이 달라져 있다. 이전 <스타워즈> 시리즈들과 <에피소드 I>과 어떤 차이가 있냐면... 간단히 <다이하드> 1편과 <다이하드> 3편 사이의 차이를 생각해 보시면 될 것 같다.

<에피소드 I> 의 공간은 기존 시리즈들과는 비교가 안될 정도로 넓어진 데 반비례해서 밀도가 줄어들어 있다. 디지털의 날개를 단 루카스는 우주공간은 말할 것도 없고, 사막, 도시, 정글, 초원, 심지어는 지금까지는 없었던 물속까지 기억도 못할 정도로 많은 공간들을 오고 간다. 하지만, 이것은 결과적으로 관객들에게 다양한 볼거리를 준다는 긍정적인 효과보다도, '정 붙일만 하면 전학을 떠나야하는 학생'의 심정을 느끼게 하는 역효과를 낳았다(이 '어디에 정을 붙여야 할지'를 고민하게 만든다는 점에서 이 영화의 공간과 캐릭터는 일맥상통).

이 대목에서 잠깐 예전의 기억을 더듬어 보자. 예전 시리즈들을 생각하면 어떤 공간들이 떠오르시는가. <새로운 희망> 하면 사막 행성(타투인Tatooine)과 죽음의 별(Death Star), <제국의 역습>하면 얼음별(호스Hoth)과 늪의 별(데고바Degobah), 구름위의 도시(베스핀Bespin), <제다이의 귀환>하면 침엽수림 행성(엔도Endor)의 모습이 눈앞에 슬라이드처럼 떠오르지 않으시는가.

그런데 <에피소드 I>하면 어떤 공간을 떠올려야 할까. 이건 꽤나 난감하다. 떠올려야 할 곳이 너무 많아서인지, 어느 곳에서도 짜임새 있는(= 재미있는) 이야기를 만들어내지 못했기 때문인지, 아니면 매력이 느껴지는 공간이 하나도 없어서인지.. 필자의 머릿속에는 딱히 떠오르는 슬라이드가 없다. 역시 내 기억력이란 그닥 믿을 것이 못되는건가.. 뭐, 어쨌든

5. 우리는 무엇을 보고 싶었으며, 무엇이 변한걸까

하지만 옛날이 그렇게 좋기만 했던것은 아닐 것이다. 필자는 여전히 루크 스카이워커라는 인물에 대해서는 그리 호감을 느낄 수가 없다. 더군다나 그가 "포스에 균형"을 가져올 그릇이라는 '현실'에는 도저히 수긍할 수가 없다. 그리고 <제다이의 귀환>에 숨어있는 백인우월주의는 여전히 못마땅하다. 주인공들 주변만 맞추는 제국군 쫄병들의 광선총 솜씨가 여전히 어이없고, 가끔 튀어나오는 몸서리가 쳐질 정도로 닭살돋는 대사는 아직도 좀 심하다 생각된다.

하지만 화재 경보등이나 캬바레 간판같이 생긴 컴퓨터, '파리 얼굴 같이 생긴 시커먼 바가지'라고 묘사할 수 밖에 없는 다스 베이더의 마스크, 고무 장화를 뒤집어쓴 것 같은 외계인 분장 같은 것들에 실망을 느꼈던 적은 없다. 오히려 재밌으면 재밌었지. 지금까지 나의 기억으로는 특수효과 때문에 <스타워즈>를 형편없는 영화라고 한 사람은 한 명도 없었다. 지금까지 머릿속에 있는 그림을 화면으로 옮기지 못했었던 한 을 풀어보려는 조지 루카스의 심정을 알듯하면서도, 그를 이해할 수 없는 이유는 바로 이것이다.

자신의 관객들은, 탁구대 위에 쌓아둔 흰 상자들을 지프차에 실린 카메라로 촬영해서 만들어낸 공중전 장면을 보면서도 심장을 졸일 수 있으며, "츄바카 털 인형에는 얼마나 키 큰 사람이 들어가 있는걸까.."같은 걸 생각하면서도 츄바카라는 캐릭터에 호감을 느낀다는 사실을 조지 루카스는 완전히 잊은듯 하다.

하지만, 변한건 어쩌면 조지 루카스 뿐만이 아닐지도 모른다. 정작 변한것은 관객들이 아닐까? 냉전이 끝나고 '인류의 공적'이 사라진 지금, 조지 루카스에게 "그냥 선과 악이 대결한다고 하면 되는 거여요!"라고 하는건 너무 무책임한 충고일까. 100퍼센트 디지털로 만든 영화도 나오는 지금 "CG로 만든 장면들은 역시 김빠진단말야"라고 중얼거리는 건 너무 팔자 좋은 얘기일까. 영화보다 더 영화같은 컴퓨터 게임이 나오는 지금 "인물의 개성이 없는 영화에서 뭘 보란 말이냐!"라고 외치는건 너무 촌스러운 일일까.

조지 루카스는 그 모든걸 일찌감치 알아차린 선각자일까. 루카스는 16년이 지나는 동안 너무나 변해버린 이 시대의 상황에 맞게 미국의 건국 신화를 새로 쓰려는 건 아닐까. 그렇다면 <에피소드 I>은 정말 그 대장정의 예고편에 불과한 걸까..

6. ....

근데,

그래서 어쨌다는 거지?하는 생각이 사실 이런 꼬리에 꼬리를 무는 생각의 끝이다. 너무 허무한 결론인가.

근데 사실, 그럴싸한 건국 신화 하나 가지지 못한(사실은 매우 폭력적이고 야만적인 건국과정을 가지고 있는) 미국 사람들에게는 <스타워즈> 시리즈가 전설이고, 신화고, 역사고, 축제일지도 모르겠지만, 우리에게 그것은 어쨌든 한편의 흥미로운 상업영화일 뿐이지 않은가. 좋은 극장의 좋은 자리에 앉아 가상현실에 가까운 환타지에 푹 빠져 보는 것이 목적인.


아, KFC에서 <스타워즈> 세트를 파는 것을 보니, 또다시 여름이 오긴 왔나 보다.

1999 6. 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