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몰 솔져(Small Soldiers)> 를 보고 나서



1.

조 단테Joe Dnate라는 감독을 <그렘린> 시리즈나 <이너 스페이스>(멕 라이언을 드디어 세계에 알린 바로 그 영화, 그리고 그녀를 유부녀로 만든 바로 그 영화)의 감독으로 기억하는 분들께 <스몰 솔져>는 어쩌면 '지나치게 어두운 판타지 영화'일수도 있다. 하지만 그를 냉전시대, 일상 곳곳에까지 스며있는 냉전적 사고에 대한 통렬한 풍자극 <마티니>의 감독으로서 기억하고 싶어하는 분들께는 아마도 이 영화 <스몰 솔져>는 분명 또 하나의 유쾌한 칼날일 것이다.

물론 조 단테는 소위 '스필버그 사단'의 기대주들 중 흥행의 열등생에 속하는 감독이다(물론 우등생은 말할것도 없이 로버트 제멕키스고). 하지만 어쨌든 그 역시 스필버그 사단의 아이인지라, 보란듯이 심각하거나 삐딱한 영화를 만들어내지는 않는다. 그럴리 없다. 'SF 어드벤쳐'가 주 특기인 그가 쓰는 제작비만해도 얼만데.

이건 <스몰 솔져>의 경우에서도 물론 마찬가지다.

2.

이 영화는 재밌다. '살아 움직이는 장난감'이라는 스필버그의 오래된 아이디어를 약간 아동스럽긴 하지만 나름대로 재밌게 풀어나가는 줄거리, 서보 모터servo motor 제어로 정교하게 움직이는 플라스틱 장난감을 만들어내는 헐리우드의 기술력, 팔팔하게 살아 움직이면서도 여전히 플라스틱 장난감같아 보이는 CG를 만들어낸는 솜씨, 마치 <이너 스페이스>의 마이크로 코스모스적인 상상력의 확대판인 것 같은 구성.

이 정도면 <토이 스토리>같은 '온 가족 오락영화'까지는 아니더라도 '오락영화'로서는 충분히 제 몫을 다하고 있다. <화성 침공>을 떠올리게 하는, 명암 대비가 뚜렷하지만, 원색의 화려함을 그대로 살리고 있는 조명(이 덕분에 영화는 컴퓨터 게임 같은 분위기를 유지할 수 있다), 지루할 틈을 주지 않는 이야기의 편집 속도도 물론 한 몫하고 있고.

이 중, 가장 재미있는 건 뭐니뭐니해도 장난감 주제에 할 껀 다하는 똑똑한 그리고 악랄한 장난감 집단 '코맨도 엘리트'의 대장 '칩 해저드'와 그의 부하들이 하고 다니는 짓들이다. 진짜 미국 군바리보다 더 군바리같은 '코맨도 엘리트'들의 진지한 대사, 표정, 동작 하나하나에 관객들은 뒤집어지지 않을 수가 없는 것이다. 특히 프라모델이나 버기카 같은 것들을 좋아하시는 분들이라면, 못이 총알이 되고, 테니스 공이 폭탄이 되고, 주방기구가 장갑차가 되는 그 아기자기한 전투가 주는 즐거움을 감당하기 힘들지 않을까.

어쨌든 'small'한 스케일을 크게 이용할 줄 아는 이 영화는, 광고문구의 주장처럼, 확실히 재밌는 "하이테크 시뮬레이션 액션(우리나라 영화 홍보회사의 카피 제작 실력은 이제 거의 득음의 경지다)" 영화다.

아무리 그렇다고 해도 제 옆에서 영화를 보던 분처럼 시종일관 "오예" "와우" " 오옷"등의 감탄사를 연발하거나, 때를 가리지 않고 극장이 떠나가도록 웃음소리를 연발하고만 있으면 곤란하다. 이 영화는 사실 <토이 스토리>적인 즐거움을 빙자해서 미국의 군사 패권주의, 그것을 가능하게하는 테크놀러지, 그리고 그 톱니 바퀴로 굴러가는 미국 자본주의에 대한 신랄한 야유를 퍼붓고 있으니까. 그리고 그 야유는 점점 섬뜩한 경고로 변해가니깐 말이다.

3.

그 야유는, '초대형 SF액션 어드벤쳐'인 척 하면서 능청맞게 시퍼런 칼날을 숨겨뒀던, 덕분에 수 많은 관객들에게 개념없는 틴에이저 무비로 '오해'되었던 <스타쉽 트루퍼즈>처럼 교묘히 감춰진 것이 아니다. <스몰 솔져>의 야유는 단순할 정도로 직설적이고, 그리고 노골적이다.

성조기 지그소 퍼즐(퍼즐의 들쑥날쑥한 균열 덕분에 성조기는 '맞춰져'있다기 보다는 곧 무너져내릴 것 같아 보인다)을 배경으로 부하들앞에서 케네디의 연설을 그대로 흉내내는 '칩 해저드'(대통령의 '역사적인' 연설이 한낱 장난감의 입에서 읊어진다는 것 자체가 하나의 조롱이다)의 연설로 시작되는 선과 악의 전쟁은, 월트 디즈니스러운, 즉 <토이 스토리>스러운 선과 악의 대결과 별로 달라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둘 사이에는 결정적인 차이가 있다. 그 차이는 전쟁이 끝난 뒤, 부서진 장난감의 '해골'을 우지끈 짓밟고 등장하는 장난감 회사 사장의 모습에서 명확하게 드러난다. '코맨도 엘리트'들의 무대뽀적인 공격성은 어디에서 나온 것인가? 조 단테는 영화가 끝나기 5분 전까지 관객들이 잊고 있었던 사실을 불쑥 들고 나온다. 그건 바로 사장(= 자본가)으로부터 나온 것이었다!

영화는 사장 '질(데니스 리어리 분)'이 좋은 사람인지 나쁜 놈인지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는다. 열 이면 아홉 사소하게 지나쳐 버리기 십상인 이 부분이야말로 <스몰 솔져>의 가장 절묘한 부분이라고 생각된다. 조 단테는 무엇이 문제인가를 정확하게 꿰뚫고 있는, 그리고 그것을 정확하게 말할줄 아는, 헐리우드에 서 몇 안되는 감독중의 하나임이 여기에서도 확인된다.

즉, 그는 대부분의 헐리우드 영화들에서 '사람' 또는 '인간성'의 문제로 돌리는 '악'의 근원(결국 '악'을 퇴치하기 위해서는 모든 사람이 착해지면 되는 것이다)이, 사실은 '시스템'에 있다는 것을 얘기하고 있는 것이다. 이걸 다른말로 하면 이렇게 될 것이다. "자본가도 얼마든지 사마리아 인의 심성을 가질 수 있다".

바로 이 점이, 무엇이 문제인지를 정확하게 알고 있는, 그것을 어떻게든 자기 영화에서 얘기하고야 마는, 덕분에 꿈과 사랑과 희망이 넘쳐흐르지 않는 영화를 만들어내는 반골기질이 조 단테를 스필버그 사단의 낙제생으로 만든 가장 큰 요인이다. 하지만 이것이 그의 영화의 가장 큰 매력이다.

물론 조 단테가 헐리우드의 켄 로치라는 얘기는 아니니까 오해 없으시길 바란다. 하지만 그가 <마티니>에서 절묘하게(그리고 기막히게 재밌게!) 보여줬던 반골기질을 6년이 지난 지금 다시 만날 수 있다는 역시 짜릿짜릿하게 신나는 경험이다.

4.

사장이 전쟁의 흔적을 간단히 돈으로 수습하고, 우리의 주인공 앨런의 엄마와 아빠마저 이 정도 주신다면야하면서 항복선언을 하면, 영화속에서 희망 모조리 사라진 듯 하다. 깡패 군바리들에 대한 한판의 승리도 한낱 푸닥거리에 지나지 않았던 것일까? 그럴리가. 이 영화가 2천만불짜리 헐리우드 영화임을 기억하신다면, 낙관적인 엔딩이 준비되어 있음은 당연지사다. 하지만 이 해피 엔딩 역시 대책없는 낙관으로 흐르지 않는다. 'loser'들의 집합 '고고나이트'들은 요행히도 살아남지만, 그들에게 열려있는 미래는 그리 장미빛이 아니다. 앨런이 마련해준 배를 타고 이상향 '고곤'을 찾아 강으로 떠내려가는 그들의 모습을 보고 누가 장미빛 미래를 떠올릴 수 있겠는가..

무척이나 상투적인 듯한 이 '해피엔딩'은, 하지만 여느 해피엔딩과는 다른 방법으로 보는이의 마음을 흔든다. 그것은 영화가 약속의 땅 '고곤'을 섣불리 만들고, 보여주고, '고고나이트'들을 거기에서 살도록 만들어주는 손쉬운 결론으로 타협하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우리는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에서 이상향을 찾기란 그리 쉽지 않음을 잘 알고 있다. 그것이 쉽사리 눈앞에 나타나주지 않는다는 것도 잘 알고 있다. 누구나 알고 있는 그러나 대부분의 헐리우드 영화들이 눈을 돌려버리는 그 사실을, 조 단테는 '고고나이트'들의 대장 '아처'의 입을 빌어 멋드러지게 얘기하고 있다. "눈에 보이지 않아도 우리는 그것이 있다는 것을 믿는다. 우리는 그 곳을 찾아낼꺼야"라고.

조 단테가 '스필버그 사단의 낙제생'이라는 오명(?)을 뒤집어쓰면서도 '꿈과 사랑과 희망의 장미빛이 넘쳐나는' 영화를 만들지 않는 이유는 바로 이것일 것이다.

화려한 환상보다는 남루한 현실을 선택한 댓가로 낙제생이 되었다면, 그렇다면, 낙제생이 된들 어떤가.

5. 덧붙여서

1. 물론 <터미네이터 2>의 '전 지구, 전 인류의 미래를 구원한다' 정도의 큰 스케일과는 정 반대인 이 '미니 홈 전쟁'이 너무 애들 장난 같다고 느끼실지도 모르겠다. 이 대목에서 생각나는 롤랑 바르트Roland Barthes의 '장난감'에 대한 언급을 적어보자. "프랑스 장난감은 어른들의 기능세계를 문자 그대로 예시하고 있다는 사실은, 언제 어느 시대에나 군인, 우체부들, 베스파 스쿠터를 만들어낸 본성의 알리바이를, 아이가 생각해 보기도 전에 구성해 줌으로써 그 모든 것을 받아들이도록 준비시킬 수 있을 뿐이다. 장난감은 여기에서 어른들에게는 익숙한 모든 것들의 목록을 보여준다. 즉, 전쟁, 관료주의, 추함, 화성인 등. ... 아이는 세계를 창안하지 않고 단지 (어른들이 축소판으로 제공한) 세계를 이용한다."

즉, <스몰 솔져>의 전략은 전쟁을 축소해서 보여주는데 있는 것이 아니라, 일상적인 중산층 가정안에서의 일들을 미국 전체로 확대해서 비유하는데 있는 것이다.

2. 앞에서 잠깐 말씀드렸지만, 이 영화의 주인공들은 실제 인형으로 만들어지기도 했고, CG로 처리되기도 했다고 한다. 당연히 CG를 만든 ILM에서 고생깨나 했을꺼 같다. 플라스틱의 장난감 특유의 '부자연스러운' 동작을 CG로 흉내내야 했으니까 말이다. 영화를 보시면 아시겠지만, 역시 CG와 실제 인형은 거의 구별이 되지 않는다. 이제 헐리우드 CG는 '부자연스러움'을 '자연스럽게' 만들어내는 경지에 도달했다.

3. '칩 해저드'역의 토미 리 존스와 '아처'역의 프랭크 랑겔라의 훌륭한 목소리 연기도 빼고 얘기할 수 없다. 순식간에 비키니 입은 프랑켄슈타인으로 변한 예쁜이 인형(이 또한 공주님 컴플렉스에 대한 난도질) 그웬디 인형의 앙탈에서 크리스티나 리치의 칼진 목소리를 들을 수 있는 것도 재밌다.

4. 또, 이 영화는 많은 영화들을 패러디하면서, 관객들에게 또 하나의 즐거움을 안겨주고 있다. 특히 '칩 해저드'가 헬기를 타고 전신주에 매달려 있는 '앨런'을 공격할때 흐르는 바그너는 바로 그 유명한 <지옥의 묵시록>의 헬기 공습 장면에 대한 패로디가 아니던가. 물론 영화 전편에 흐르는 하드락 넘버들도 이 영화에서는 빼놓을 수 없는 매력인데, 특히 기억에 남는 음악 하나.

'앨런'의 여자친구 '크리스틴'이 그웬디 인형들에게 당할 때 흐르는 곡은 바로 '크리스틴'과 '앨런'이 공통적으로 좋아하는 밴드인 레드 제플린Led Zeppelin의 "Communication Breakdown"이다. 이 타이밍에 이 선곡은 나름대로 꽤 의미심장하다.

1999 6. 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