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기 나이트(Boogie Nights)>를 위한 변명




1. 포르노 영화를 식별하는 기준

박찬옥(영화 제작소 '청년'소속, 영화감독) : "섹스 씬에서 '뻥 조명'을 쓰면 포르노, 그렇 지 않으면 포르노가 아니다"

움베르토 에코(이탈리아의 소설가이자 기호학자) : "만일 A지점에서 B지점으로 갈 경우에 등장인물이 여러분의 원하는 것 이상으로 많은 시간을 거리에서 낭비한다면, 지금 당신이 보는 영화는 포르노 영화이다."

여러분께서 포르노 영화/안포르노 영화를 구별하는 기준은 무엇입니까? 성기가 노출된다/아니다? 치모가 드러난다/아니다? 에이 설마. 여러분들같이 수준높은 관객들이 그런 걸 포르노/안포르노의 기준으로 삼을리는 없을 겁니다.

그건 공진협 아자씨들 같은 '영화에 영자도 모르는' 사람들이나 생각해내는 기발한 아이디어고. 아마도 여러분들은 이것보다는 훨씬 더 세련되고 '영화적인' 기준을 가지고 계시리라고 생각합니다.

필자도 포르노 영화/안포르노 영화에 대한 나름대로의(그리고 공진협 아자씨들보다는 덜 촌스러운) 기준을 가지고 있습니다.

좀 재미없는 기준일지는 모르지만 필자가 오랜 시간동안 고심해서 만든 포르노와 안포르노 영화를 구별하는 기준은 바로 "섹스 장면을 위해서 영화의 줄거리가 만들어져 있는가, 아니면 영화의 줄거리를 위해서 섹스 장면이 삽입되여 있는가"입니다. 물론 전자가 포르노, 후자가 안 포르노입니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부기 나이트>는 명백히 포르노 영화가 아닙니다. 따라서 이 영화를 두고 "<부기 나이트>는 영화에 대한 영화, 포르노에 대한 포르노"라고 읊조린 영화 평론가 이명인씨의 얘기는 <쉬리>평에 이은 또 하나의 횡설 수설임을 얘기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부기나이트>는 포르노 영화에 대한 영화라고 할 수는 있지만(사실 그것도
아니지만), 포르노 영화는 절대 아입니다. <부기 나이트>는 '뻥조명'을 쓴 것도, 장소 이동에 쓸다리 없이 시간을 많이 쓴 것도, 섹스 장면을 위해서 스토리가 전개되는 것도 아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부기 나이트>가 "포르노에 대한 포르노"라는 이명인씨의 말을 믿고 극장을 찾으려고 채비하시는 분들은 방향을 바꿔 지금 곧장 청계천으로 향하시길 권해드립니다.

<부기 나이트>가 포르노가 아니었다고 "에잇, 뭐야"라며 애꿎은 입장권을 북북 찢으시는 분들을 만나는 것은 당사자로서나 그걸 보는 사람을서나 그리 즐거운 일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물론 여러분들께서 이런 경거망동을 하시지는 않겠지만.


2.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귀여운 너무나 귀여운

<부기 나이트>를 보고 나서 가장 놀라왔던 점은 그들 모두가 나름대로의 인간적인 개성과 삶의 무게를 안고 살아간다는 점입니다. 비록 뒷짐지고 목에 힘주며 고상스러운 척하는 분들께는 쓰레기 뭉치가 오른쪽으로 뒤집어졌다가 왼쪽으로 뒹구는 것으로 밖에 보이질 않겠지만 말입니다.

우선, 이 등장인물들의 거의 모두가 한 명씩 "관객들께 인사"를 드리는 오프닝의 롱 테이크 장면은 아주 놀랍죠. <스네이크 아이즈>의 인트로 만큼이
나 멋지고 부드럽죠. 그것보다는 훨씬 소박하지만요.

그 뒤로도 몇번 나오는 이 영화의 롱테이크 장면은 '롤러걸(헤더 그레이엄 분)'의 유연한 롤러 스케이팅 만큼이나 섹시하고 매력적입니다. 그 숨겨진 기교는 야단스럽게 드러나지 않기 대문에 더 매력적이고 섹시합니다.

그리고 그렇게 많은 등장인물들은 모두가 골고루 자기 개성을 가지고 있다는 것. 이것 또한 놀랍습니다.

이들 모두 이 영화의 주인공 '덕 디글러(본명 에디 아담스, 마크 월버그 분)'와 그를 키우는 포르노 감독 잭 호너(버트 레이놀즈 분 ), 그리고 그의 애인이자 포르노 배우 앰버 웨이브즈(줄리앤 무어 분), 이 세명을 둘러싸고 싸우고, 사랑하고, 질투하고, 죽고, 죽이고, 화해합니다.

그 등장인물들 모두가 개성 덩어리며, 그들의 인생 하나하나는 모두 소홀히 다루어지지 않습니다.

소홀이 다 뭡니까. 감독은 미치 악기를 다루듯 소중하게 그 한 명 한 명의 인생을 그려 나갑니다. 모두가 순수했고 그래서 좋기만 했던 옛 시절과, 변화를 강요당한 힘겨운 나날들, 그리고 그 어려운 날들을 거쳐 다시 얻게 된 새로운 희망..

어디라고 다르지 않은 삶의 이런 모습이, 순진하고, 인간적인, 그래서 너무나 귀여운 '덕 디글러'라는 포르노 배우와 그의 친구들에 의해 디스코/소울처럼 경쾌하게 그려집니다.

말하자면 <부기나이트>의 세계는 "디스코가 세계를 지배하던 날", 츄바카 닮은 사람이 "나, 핸솔로 닮았지?"라고 천진하게 그리고 진지하게 묻는 세계입니다(이 장면 또한 안타깝게도 가위의 마수를 벗어나지 못하고 말았습니다. 조금 뒤에 말씀드릴께요).

포르노를 찍는 사람들이지만 악의나 더러움같은 건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습니다. 모두가 순진하고, 약하며, 그들의 영화만큼이나 감추는 것이 없습니다. 그리고 그럼으로써 모두는 상처받습니다. 그리고 결국 이들은 서로에게 기대면서 서로의 상처를 치유하죠.

마지막 장면. 이들이 한 자리에 모여 한 '가정'을 이루는 장면은 근래 보기 드문, 그야말로 '가슴이 저미도록' 따뜻한 해피엔딩입니다.

잭 호너의 '잔소리'를 듣고 생글거리면서 자기 방 청소를 하는 롤러걸의 표정을 보십시오. 앰버에게 조용히 키스하는 잭 호너의 대사를 들어 보십시오. '아무렴, 행복이란 이런거지'하는 생각이 절로 듭니다.

한 구석에 서는 '이게 영원히 계속되진 않을꺼야'는 속삭임도 들리지만, 그렇기 때문에 오히려 그 행복은 더욱 생생하고 절절하게 다가올 수 있었습니다.

3. 감독의 재능 - "자기도 모를꺼야. 자신이 얼마나 재능있는지"

그러고도 영화가 중구난방으로 산만해지지 않는 건 폴 토마스 앤더슨이라는 젊은 감독(그리고 각본, 제작)의 재능 덕분이라고 할 수 밖에 없을 것입니다.

'뉴스위크'가 "폴 토마스 앤더슨은 그에게 얼마나 재능이 넘쳐나는지 스스로도 모를 것"이라고 했다는데, "과연"하는 생각이 절로 듭니다. 이야기를 끌어가는 그의 모든 재능은 너무나 자연스럽기 때문이죠.

이 영화에는 실로 많은 테크닉들(스테디캠을 쓴 롱테이크는 기본이고 프레임 사이즈의 변환, 심지어는 화면 분할까지)이 등장합니다만, 그게 관객의 눈을 압도해버리지는 않습 니다. 왕가위 감독이 스텝 프린트와 핸드헬드를 자신의 십팔번으로 들고 나왔을 때와는 사뭇 다른 분위기죠.

<부기나이트>의 테크닉은 <중경삼림>의 테크닉처럼 지신을 한껏 드러내며 보여주는 테크닉은 아니라는 말씀입니다. 하지만 그 드러나지 않는 테크닉은
바로 자연스러움입니다.

어떤 평론가는 마틴 스콜세지에게 "내용과 형식을 가장 잘 조화시킬 줄 아는 감독"이라고 했는데, 그렇다면 앤더슨 감독이야말로 90년대 끝자락에서 발견한 젊은 마틴 스콜세지라고 할 수 있을 겁니다.

신문을 좀 들여다 보니 앤더슨 감독을 타란티노 감독에 많이 비교를 해 놓았던데, 그 이유는 90년대의 재능있는 감독 중 아는 사람이 타란티노밖에 없던가, 영화 홍보사에서 나눠주는 홍보자료를 그대로 베꼈거나 둥 중의 하나 입니다.

이 영화만 보면 앤더슨 감독에겐 "제 2의 타란티노"라는 호칭보다는 "젊은 스콜세지"라는 호칭이 훨씬 더 어울린다는 걸 눈치채시게 될 겁니다. 특히,<분노의 주먹(성난 황소Raising Bull)>에서 따 온 것이 너무나 명백한,덕 디글러가 분장실에서 거울을 쳐다보면서 혼자 대사를 연습하는 장면을 보면 말이죠.

이 재능있는 감독은 이 명 장면에 그저 존경만 표시하는 것으로 만족하지는 않았죠. 덕 디글러가 대사연습을 다하고 자리에서 일어난 뒤, 지퍼를 내리고 그 33센티짜리 페니스를 '덕!'하고 내놓으면서 "넌 최고의 스타야"라고 중얼거리는 장면은 단순한 장난기라고 만은 도저히 생각할 수 없는 '명장면(이름나서 명장면, 멋져서 명장면)' 입니다.

과연 '엔터테인먼트 위클리'라는 미국판 씨네 21에서 이 영화를 98년 최고의 영화로 뽑은게 지나친 호들갑은 아니었겠군..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런걸 보면 미국판 '씨네 21'은 나름대로 신뢰할 만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최소한 우리나라의 '씨네 21'보다는 믿음이 가네요.


4. 하지만! <부기 나이트> 보시면 안됩니다

이 영화, 정말 보지마시길 권해드립니다.

이렇게 실컷 칭찬만 늘어놓다가 왜 갑자기 보면 안된다 고 하냐구요? 지금까지 읊은 얘기들이 모조리 거짓말이니까? 설마.

그 이유는 지금 우리나라의 극장에서 상영되고 있는 <부기 나이트>는 <부기 나이트>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지금 우리나라 극장에서 <부기 나이트>라는 제목으로 상영되는 영화의 원래 제목은 <가위 나이트>입니다.

제가 롤러걸이 홀떡 벗어서 치모가 드러나는 장면에서 시커먼 스프레이를 뿌린 것이나, 덕 디글러의 거울앞 '덕!' 장면에서 빨갛고 길쭉한 화투장이 나오는 것 정도로 이런 말씀을 드리는 건 물론 아닙니다. 그 정도는 뭐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니까요. <프레타 포르테(패션쇼)>의 '춤추는 빨간하트' 사건이 우리의 뇌리에 아직도 깊숙히 각인돼 있는데, 제가 감히 스프레이 없는 <부기 나이트>를 꿈꿨겠습니까.

이번 가위질은 그 뿐만이 아닙니다. 극장주들, 이 영화가 포르노가 아니라는 점에 실망했는지 야하지도 않고 재미없다 싶은 장면들은 몽땅 다 짤랐습니다. 부기 나이트>의 엔드 크레딧에 편집자 이름으로 우리나라 극장주의 이름까지 실어줘야 할 판입니다. "한국판 특별편짐 씨네하우스 대표 ***" 이런 식으로 말이죠(전 씨네하우스에서 봤거든요).

야하지도, 폭력적이지도 않은(물론 이렇다고 해서 가위질을 하는걸 용납할 수 있다는 말씀은 결코 아니지만) 장면들을 상영횟수 한 회 늘려 보겠다고 싹둑 싹둑 자른 우리나라의 용감한 극장주들에 의해 다시 태어난 <부기 나이트>. 이걸 본 관객들이 "뭐 이딴 영화가 다 있냐"라고 하시는 것도 무리는 아닙니다.

이 '한국판' <부기 나이트>에서는 리틀빌(윌리엄 메이시 분)의 마누라가 길거리에서 'fucking'하는 장면도, 잭 호너가 "신이여, 제가, 이 영화를, 만들었단 말입니까"라고 중얼거리기 바로 전에 그가 들어다보는 그 촌스럽기 그지 없는 포르노의 오프닝, 스카티 (똥배 나온 덕 디글러의 친구)가 덕 디글러에게 키스하려고 달려드는 장면, 80년을 맞이하는 파티장의 모습, 미성년자와 추행혐의로 감방에 들어앉게 된 '대령'을 잭 호너가 면회하는 장면 등등 수도 없이 많은 중요한 장면들이 추풍낙엽처럼 잘려나갔습니다.

한 푼이라도 더 벌어 보겠다는 얄팍한 상혼이 휘두르는 칼에 말입니다. 이것도 IMF시대니까 봐줘야 하는 일일까요? 꼴도 보기 싫은 헐리우드 영화에 주저없이 가위를 대는 한국인의 민족혼에 태극기라도 휘날려줘야 하는 걸까요?

"<쉬리>, <타이타닉>의 흥행 기록을 깨다!" 옆에 "한국 극장가, <부기나이트>를 리메이크 하다!"라는 플랭카드도 하나 달아줘야겠군요. 물론 배경은 '바이 코리아' 광고에 나오는 울렁울렁 휘날리는 대형 태극기 입니다.

참, 기가 막힐 따름입니다. 저는 운좋게도 스프레이도 화투장도 가위질도 없는 원판을 볼 수 있는 기회가 있었기 때문에 이런 사실을 알 수 있었습니다.

차라리 "<부기 나이트>는 참 이상스런 영화구나"라고 생각하는 편이 오히려 더 마음 편했을지도 모릅니다. 첫 가위질 을 눈치채고 난 뒤 영화 상영도중, 그리고 극장문을 나서면서 내내 느꼈던 그 분노를 느끼지 않았어도 됐을 테니까요.


제가 가장 화가 나는 것은 <부기 나이트> 같이 재미있는 영화가 난데없이도 난해한 영화로 둔갑해 버렸다는 사실입니다. 그리고 오랜만에 찾아온 헐리우드의 좋은 영화에 대해서 여러분과 정당하게 얘기를 나눌 수 있는 기회를 잃어버렸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3년전 영화 사전심의 문제를 가지고 그렇게도 거품을 물던 신문, 잡지 어디 하나 이런 사실을 알리지 않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하긴, 고귀하신 기자, 평론가 나으리들께서 미천한 관객들 따위가 가는 극장에 어찌 왕림하시겠습니까마는.

엔드크레딧이 올라가기가 무섭게 불이 켜지고, 등 떠밀려 퇴장하는 관객들 중 눈에 띈 한 외국인 관객의 쓴웃음을 보면서 비참한 기분마저 들었습니다.

<쉬리>의 혁혁한 전과를 보고 한국 영화의 발전에 갈채를 보내기 보다, 이런
사소한 문제갖고 한국 영화판에 실망해 버리는 저는 정말로 애국심이 없는 사람인가 봅니다. 박정희 시대에 태어나지 않은것이 천만 다행이죠.

어쨌든 요즘 우리나라의 영화판 돌아가는 모양을 볼작시면 덕 디글러의 포르노보다 훨씬 더 포르노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기본도 제대로 못 갖춘 영화에 민관군 합동으로 '뻥조명'을 들입다 쏟아붓는 것도 그렇고, 영화가 사회에 위안을 준다기보다 오히려 사회가 영화에 위안을 주는 '주객전도'도 그렇고, 제대로 된 영화 한 편 만드는 것 보다는 숭숭 뚫린 구멍에 주절주절 변명을 갖다 붙이는데 쓸다리 없이 많은 시간과 노력을 소요하는 것도 그렇구요.


[덧붙여서] 그래도 뽑아보는 <부기 나이트> 베스트 3

<멋진 장면> 베스트 3

1위 : '포르노 패밀리'들이 디스코 파티를 하던 중 덕 디글러를 중심으로 동작을 맞춰 춤을 추는 장면. 이 대목에서 영화는 갑자기 뮤지컬로 변신하는 아주 짤막한 마술을 보여줍니다. 이 영화에서 가장 귀여운 장면이자 아찔하도록 멋진 장면.

2위 : 등장인물이 거의 모두 소개되는 오프닝 장면과 '포르노 패밀리'들이 잭
호너의 집에 모이는 마지막 장면. 단지 스테디캠을 쓴 롱테이크라는 점만이 훌륭한 것은 아닙니다. 세월으로 흐름으로 조금씩은 늙고, 조금씩은 성장해있는 '패밀리' 멤버들의 모습이 첫 장면과 멋진 수미쌍관을 이루고 있다는 점에서도 훌륭한 장면.

3위 : 덕 디글러가 분장실에서 혼자 대사 연습을 하는 마지막 장면. <성난 황
소>의 마지막장면을 자기 색깔에 맞게 고쳐 쓴 재능. 그리고 그 모든 일이 시작되게 만든 그의 33센티짜리 페니스를 '덕!'하고 보여주는 과감함과, 그것의 주인이 그것에 바치는 헌사의 진지함이 만들어내는 조용한 감동.

<짤린 장면> 베스트 3

1위 : 덕 디글러가 출연한 포르노 영화의 오프닝. 너무나 촌스럽고, 그래서 너무나 웃기고. 이 영화에 진지한 표정으로 출연하는 배우들이나, 그 영화를 보고 자신이 정말 감동먹어서 "오, 신이여, 제가, 이 영화르 만들었단 말입니까"라고 중얼거리는 잭 호너나 모두가 귀여워지게 만드는 그 장면.

2위 : 파티장 길거리에서 구경꾼들에 둘러싸여 '퍽킹'하는 리틀빌(콧수염 난
조감독, <파고>에서 아내를 납치해달라고 하는 남자)의 마누라와 그걸 보고 무기력하게 돌아서는 리틀빌. 이 장면을 보지않구선 나중에 리틀빌이 아내를 죽이고 자신도 자살하는 장면이 이해가 갈 턱이 없습니다.

3위 : 스카티(필립 세이모어 호프먼 분)가 덕 디글러에게 새 차를 보여주다가
갑자기 달려들어 키스하려는 장면. 미성년자 추행으로 감옥에 갇힌 '대령'을 면회하는 잭 호너. 마침내 자신의 오디오 가게를 차린후 점원 두 명과 함께 가게 앞에서 춤추는 흑인 아저씨 장면. 세 장면이 공동으로 순위에 올랐습니다.

※ "<웃긴 장면> 베스트 3"는 '그래도' 영화를 보실 분들을 위해 적지 않도록 하겠습니다.

※ 그리고 영화 수입사측에서 짜른 건지, 극장측에서 짜른 건지는 아직 확실하지 않습니다. 어쨌든 결과적으로 볼 때 둘 사이의 공모가 없었다면 이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겠죠.

1999 3. 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