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선 1번 작전은 완벽하게 성공했다. 확실히 영화를 가장한 이 뮤직 비디오 메들리를 사람들은 모두
'영화'라고 불러주고 있으니까 말이다.
하지만 필자가 보기에 2번 작전은 완벽한 실패다. 아마도 이 영화가 락 밴드를 주인공으로 만들면서
도입하고 싶어했던 '자유', '반항/저항'의 이미지는, 도입은 커녕 도둑질 해온것으로 밖에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그나마 도둑질이라도 잘 하지, 소화되지 않은 그 이미지들은 처치곤란한 장물같이 느껴진다.
우선 여죄수들의 락 밴드라는 설정은 매럭적이었다. 지금 다시보면 어떨지 모르지만, 예전에 주윤발이
주연한 <감옥풍운>을 꽤 재밌게 본 기억도 있어서 기대를 더 하게 했고 말이다.
하지만 기대가 무너진 건 순식간. 그 이름하여 밴디트라는 4인조 밴드가 황당한 탈옥에 성공하고 난
뒤부터, 즉 이 영화가 <델마와 루이스>를 흉내내기 시작하면서부터 기대는 사라진다. 그리고
실체를 알 수 없는 "열정, 자유,
반항, 순수"가 시작된다.
뭐가 나를 구속하고 억압하는지도 모르지만, 기냥 자유를 위해 반항한다. 왜? 우리는 락하니까. 그럼,
락은 왜하는가. 자유를 위해 반항하려구.
이 순환논리는『 탈옥해서 아무도 안 잡으러오니까 셀프 비디오 녹화해서
우리좀 잡아가 보라고 방송국에 보내고, 자기들이 보낸 데모 테이프가 뜨니까 음반회사 가서 깽판부리고,
클럽에 들려서 공연하다가 인질극 벌이고 잘생긴 남자 인질로 끌어가고... 』등등등의 절대
설득 안되는 해프닝으로 끝도 없이 이어진다.
뮤직 비디오하구 해프닝만으로 영화를 만든다는게 새삼 미안했던지, 누구는
이렇게 상처받고 저렇게 억압받고 등등 여러가지 핑계들이 따라 붙지만 러닝 타임만 늘어지게 늘어날 뿐이다.
하려면 "겁없"이 할 것이지, 지루한 핑계는 왜 갖다 붙였는가. 그런다고 뮤직 비디오가
영화가 되는것도 아닌데 말이다.
게다가 그 뮤직비디오가 참신하길 한가, 음악이 참신하길 한가. 이 영화보다는 조성모 뮤직비디오가 훨신
더 영화같다.
패로디
제대로 갖춰진 얘기 한 편을 만들 자신이 없었는지, 뮤직비디오 찍느라 줄거리 만들 시간이 없었는지,
여튼 영화는 뮤직비디오와 뮤직비디오 사이는 <델마와 루이스>에서 훔쳐온 것들로 메운다.
어쩌면 카챠 폰 카르니에라는 이 젊은 감독은 "<델마와 루이스> 얘기는 괜찮은데..
재미가 좀 없군.. 내가 양념 한 번 듬뿍 발라서 다시 궈주지"라고 생각했나보다.
<네프 므와>를 말아먹은 <나인 먼쓰>, <베를린 천사의 시>를 오해하게
만든 <시티 오브 앤젤>, 그 밖에 헐리우드로 가서 희생당한 유럽영화들의 원혼을 달래려는듯
이 영화는 <델마와 루이스>를 효과적으로 말아먹고 있다. 복수라면 대단한 성공이다.
탈주 로드무비라는 전체 설정은 기본이고, 약하고 여성적인 여자(앤젤,
니콜 레트 크레비츠 분)와 그녀를 '지켜주는' 강하고 중성적인 여자(루나,
야스민 타바타바이 분)라는 <델마와 루이스>의 성격설정부터 마지막 장면에 나오는 죽음과 자유를
동시에 암시하는 프리즈 프레임freeze frame까지, 영화 곳곳에서 어디서 많이 본 장면들이 줄줄
등장한다.
압권은 <델마와 루이스>에서 건달역을 맡았던 브래드 피트와 똑같은 설정인 웨스트(베르너
슈라이어 분)라는 인물이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생긴것까지 닮은 남자를 쓸 필요가 있었을까? 아니다.
생긴것만 닮은 남자였다.
이런 사소한 것들만 훔쳐왔다면 애교로 봐줄수도 있다. 하지만 <델마와 루이스>에 대한 연구깨나
한 것 같은 이 영화가 반항(남성중심의 사회에 대한 반항)과 자유(죽음을 통해서만 얻을 수 있는 자유,
결국은 "반항"과 일체가 되는)라는 주제를 놓칠리 없다.
<델마와 루이스>를 끝까지 속속들이 말아먹겠다고 작정한 이 영화가 그 주제를 대단치도 않은
겉멋을 위해 얍실하게 써먹는건 어쩌면 당연한 수순일 것이다.
이 영화에서 "반항"은 엔젤과 루나를 한꺼번에
'건드린' 웨스트를 길거리에
내버리는 반항이고, "자유"는 할꺼 다하게
내버려두다가 마지막 콘서트에 와서야 저격병씩이나 데리고 오는 경찰의 총에 멋드러지게 죽을 수 있는 자유다.
<밴디트>의 반항은 섹스신을, 자유는 그림좋은 라스트 씬을 위한 것이다. 잔재주와 겉멋은
<델마와 루이스>의 시각마저도 이렇게 바꿔버린다.
이쯤되니 이들을 쫒는 경찰이 말도 안되게 바보같다던지, 영화의 대립구조가 단세포적인 이분법에 근거하고
있다던지하는 문제는 문제 축에도 낄 수도 없다.
모든 것은 그림좋은 뮤직 비디오를 위한 것이니까 말이다.
기교
감옥안 장면은 푸른색조, 바깥 세상은 붉은색조. 이런 색감이 새롭고 신선한가.
왜 썼는지 도대체 알 수 없는 산광필터.. 끝까지 악착같이 쓴 걸 보면 뭔가
사연이 있을 법한데. 내 상상력으로는 짐작도 가지 않는다.
이게 세련된 것인가. 그렇게 공들인 뮤직 비디오들이 MTV보다 재밌고 기발한가. 이 영화가 내세울건
이제 기교밖에 남지 않은 것 같은데, 이것마저 이리도 진부하니 도대체 뭘 보라고 만든 영환지 파악이
되지 않는다.
조선일보 왈, 이 영화의 "타깃"이 "m.net이나 KMTV를 즐기는 뮤직비디오
광"이라는데 천만의 말씀이다. 그런 뮤직비디오 광이라면 이 영화의 기교와 아이디어의 진부함을
당장에 비웃을 것이다.
집에 케이블 TV가 나오지 않아서 MTV를 보실 수 없으신 분은, 입장료 6000원을 들고 근처 카페나
호프집에 가시길 권해드린다. 그리고 모니터 앞에 자리잡고 느긋하게 차나 맥주 한 잔 하시면서 뮤직비디오
실컷 보시라. 왜 지루....한 변명 들어가며 별로 재밌지도 않은 뮤직비디오를 보고 있어야 하냔 말이다.
MTV에서 뮤직비디오로 명성을 얻어, 장편영화까지 만들게 된 데이빗 핀처를 보라.
그가 뮤직비디오를 잘 만들었다고 해서 영화를 뮤직비디오같이 만든 것도 아니요, 뮤직 비디오에서 써먹은
테크닉들을 영화 속에 싸그리 쏟아부은것도 아니다.
이래저래 <밴디트>는 유럽 영화 망신만 톡톡히 시켜놓은 셈이다.
근데, 겁없는 여자들이 온다고?
내가 보기에는 겁없는 영화가 왔던데.
1999. 2. 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