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동경비구역
JSA> 검열결과
2000
9월 세째주
등 급 :
좃선 찌라시 등 적색 인간 도색 전문가 관람불가
그외 모든 관객 관람권장
유의사항 : 예고편, 찌라시 등을 통해 본 영화를 과도하게 심각한 영화로 예상하는 관객은
우려의 수준을 낮출 것 |

올해, 자신의 안목에 대한 일말의 쩍팔림이나, 자신의 지적 수준에 대한 일말의 의심없이 맘놓고 환호할
수 있는 한국영화를 학수고대하고 있던 관객들에게 주어진 영화들의 면모는 과연 어떠하였던가.
더
이상의 설명은 이미 무의미해져버린 쒯무비계의 전설 <비천무>,
<링>+<스크림>+<여고괴담>이라는
실험적 짬뽕을 시도한 끝에 드디어
쒯짬뽕호러시리즈라는 새로운 장르를 탄생시켰던 공포의 쒯덩어리
3인방
<가위>, <찍히면 죽는다>, <해변으로 가다>,
사랑에 대한 심오찬란한 상징과 고찰, 머 그런걸루
예술 함 해볼려다가,
이지현 몸매 빼고는 거의 예술스러운 부분 없었던 <미인>
등 쒯덩어리들의 도도한 물결은, 온 대지를 뒤덮기에 충분한 것이 아니었던가.
허나 나일강이 그러했듯, 황하가 그러했듯 범람하는 쒯덩어리들은 결국 비옥한 토양을
만들어내지 않았더냐. 결국 <공동경비구역 JSA(이하 JSA)>의
흥행 성공은 바로 이 쒯덩어리들이 만들어놓은 관객들의 욕구불만이라는 토양위에 싹틔워진 것이라 사료된다.
즉, <JSA>는 한국영화에 대해 적절한 껀수가 발생하면 언제든 즉각 파도타기 환호 대형으로 돌입할
준비가 되어있는 관객들의 막힌 코딱지를 뚫어주는 강력한 뚜레뻥이 됐다는 얘기다. 속담을 빌어 말하면 "싸고
싶던 차에 신문지 깔아줬다" 뭐 이런 얘기 되겠다.
어쩌면, 그 한 달 정도 안 판 코딱지와도 같은 욕구불만의 역사는, 무늬만 한국영화고 사실은 헐리우드
B급 액션영화에 가까왔던 <쒜리>까지 소급될 수 있을게다. 그러나 <JSA>를 그 소재의 비시무리성
때문에 <쒜리>와 비교하려는 헛된 노력이 있는거 같다만, 분명히 <JSA>와 <쒜리>는
다른 영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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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전>의
포스터
웬지 <JSA>의 한 장면과
매우 흡사한 느낌 |
사실, <JSA>와 비교할만한 영화는 따로 있다. 쌔끈하게 군 복 차려입은 '소피 장(이영애 분)'
캐릭터 때문에 <어 퓨 굿 맨>에 비교할 사람이 있는지는 모르겠으나, 그건 아니구.
그 영화는 아마 대부분의 비됴가게에는 아예 없고, 있어두 구프로 구석탱이에 짱박혀있을 꺼라구 사료되는
<휴전(A Midnight Clear, 93년 영성 출시)>이라는
미국산 영화다.
이 <휴전>이란 영화는 2차 대전 당시, 한 산골에 짱박힌 미군 정찰병 애덜(진짜 애덜)이, 똑같이
그 마을에 짱박혀있는 독일군과 맞딱뜨리면서 겪는 비극을 그 기본 줄거리로 삼고 있다.
물론 그 '비극'은, 체제에 의해서는 허락되지 않는 우정을 아아슬하게 만들어나가던 '적'들이 총알 한
발로 모든 것들을 무너뜨린다는, <JSA>와 그대로 일맥상통하는, 그런 비극이다.
미스테리
허나, 이 비극을 풀어나가는데 있어서 <JSA>와 <휴전>은 전혀 다른 방식으로 접근한다.
<휴전>이 주인공의 나레이션을 중심으로 별다른 멋부림없이 담담하게 얘기를 풀어나갔다면, <JSA>는
<어 퓨 굿 맨> 필루다 사건의 진상에 점점 접근해 들어가는 미스테리의 형식(주최측의 다소 촌시런
카피에 따르면 "미스테리 휴먼 블록버스터")으로 얘기를 풀어나간다.
하지만 판문점 총격사건의 비밀이라는 이 영화의 '눈에 보이는' 미스테리는, 관객으로 하여금긴장감을 유지시키기
위한 장치일 뿐이다. 이 영화가 진짜로 풀어나가고자하는 미스테리는 그 뒤에 숨겨져 있다는 얘기다.
그건 우리의 '적'은 어떻게 만들어지는가라는 의문과
그것을 풀어나가는 미스테리다.
총격사건의 남한측 생존자 '이수혁(이병헌 분)'에 대한 동료 군바리들의 진술 장면은 그 전형적인 예다. 이
장면에서 이수혁은 북한의 대통령 비방방송에 대한 보복차원에서 북한쪽 초소의 유리창을 아작낸 남자중의 남자로
읊어진다. 하지만 이건 그 어떤 우국충정도 아닌, 북한 초소 쪽에 돌멩이에 편지를 매달아 던질때 난 삑사리였을
뿐이라는 것이 발켜진다.
결국 사람의 머리속에 스며있는 체제의 논리는, 이런식으로 현실을 왜곡하고 있다는 얘기고, 동시에 그건
정말 우끼고 자빠라진 것이라는 얘기다.
그러나 이런 "휴먼 미스테리"의 끝에서 찾아낸 결론은 그리 새로울 것이 없다. 당연하다. '그곳에도 빨간늑대
아닌 사람이 살고 있었네'라는 필의 얘기는, 전두박통 시대에나 좀 신기할 그런 얘기가 아니던가. 따라서
이 영화는, '메시지'만 놓고 본다면 오히려 진부하다고 얘기하는 쪽이 옳겠다.
리얼리티, 복선
하지만, 이 영화가 진부함으로 빠지지 않은 이유는 그 '메시지'를 얘기하는 방식 덕분이다. 한마디로,
대박을 자처하는 대부분의 한국영화들이 가지고 있기 마련인 뭔가 휴지를 씹어 넘기는듯 목에 걸리는 그런게
없다는 얘기다.
우선 이 영화에서 가장 칭찬할 부분은 시나리오, 그중에서도 특히 대사이다.
<진짜진짜 좋아해> 시대에서 별로 나아질 것 없는 국어책스러운 대사 아니면, 능숙하지도 못한 배우들의
입에서 소화불량 상태로 내뱉어지는 전문용어(씨바, 졸라, 존나게 등) 남발이라는 극과 극 사이에서 방황하던
여타의 한국영화들과는 달리, <JSA>의 등장인물들의 입에서는 지극히 평균적이고 사실적인 대사들이
읊어진다.

본 위원은 개인적으로, 몇 번 나오지는 않지만 수색대 소대장의 대사의 리얼리티가 가장 돋보였다고 생각하는데,
특히 갈대밭에서 길 잊어묵고 좌표 살핀 다음에 "조뙈따.."를 나즈막히 읊리던 그 음성은 아직도 귓전에서
생생하다. <쒜리>의 OP 쎈타에서 울려퍼지던 높으신 군바리 어르신네덜의 낭랑한 국어책 낭독을 떠올리면
더더욱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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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쒜리>같았으면,
들고나오는 애덜마다 주윤발이 무색하게 각잡았을 소총, 야간투시경, 무전장비, 야간 저격용
소총 등의 '군사장비'들. <JSA>
에서는, 일이 터지기 전까지는 그냥 군발스들이 지고다니는 짐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아주 당연한
상식이지만, 지금까지 한국영화의 후까 관례를 볼 때, 이 또한 칭찬하지 않을 수 없는
부분이다. |
다음으로 이 영화에서 훌륭한 점은, 뭐가뭔지 존나게 복잡하게 꼬일법도 했던
스토리를 나름대로 잘 풀어낸 편집이다. 이 영화는 마치 만두마냥, 소피 장의 수사과정이라는 껍디안에다
남북 군바리들의 우정과 비극(즉, 사건의 전모)이라는 앙꼬를 집어넣은 구조를 취하고 있다. 주로
이런 구성을 취하면, 둘 다 제대로 못 다뤄서 죽도 밥도 안되는 잡스런 상황이 벌어지기 마련인데,
<JSA>는 둘 사이의 균형을 나름대로 잘 맞추고 있다.
게다가, 점점 조금씩 그 실체를 드러내면서 비극적 클라이맥스로 끌고 가는 솜씨는
무척 노련한 것이었다 사료된다. 클라이맥스로 치닫는 영화 막바지, 사진 플래시가 번쩍! 초소 창문밖으로
비칠 때 왠지모르게 밀려오는 긴장감은, 앞부분에서 줄기차게 보여준 총격 섬광의 이미지와 연결되었기 때문이다.
일부러 그런건지 아닌건지는 모르겠다만, 이런 식으로 반복과 복선을 깔고, 풀며 극을 끌어가 솜씨는 무척
훌륭하다.
스타일
하지만, 물론 단점도 있다. 그 중, 쓸따리없이 멋을 부린 감이 있는 장면전환과 화면구성은 너무 의도를
관객에게 강요하는 듯한 필을 준다.
특히 소피 장의 껌정 우산을 판문각 지붕으로 연결시킨 '머리 꼭대기에서 쳐다보기(재래식 용어로는 '버즈
아이 뷰bird's-eye view'라고 한다만)' 씬은 어찌됐던 과했다.
그러구보니, 이 영화에서는 계속해서 극단적인 수직앵글과 수평앵글이 나왔는데, 이게 가운데를 가르는 선을
중심으로 스크린을 이등분해서 '분단의 선'을 형상화시키겠다는 전략인건 알겠다. 이 영화가 가로로 더 길쭉한
화면비를 얻을 수 있는 슈퍼 35mm로 촬영된 이유도 바로 이것이 아니더냐. 남과 북의 거리, 즉 '분단'을
시각적으로 극대화하려고 슈퍼 35mm로 찍었단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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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런거.. |
이런 세부적인 부분에까지 세심하게 신경을 쓰는 노력과 장인정신은 물론 훌륭한 것이다. 다만 감독의 의도가
지나치게 개입하는 화면구성에서는, 짜임새보다는 시시콜콜 시어머니 필이 느껴진다. '돌아오지 않는 다리'에서
다양한 앵글과 거리로 강조되는 가운데 금, 네명의 남북 군바리들의 인간적 유대를 강조하기 위한 360도
카메라 회전 등에서는 미원 의존도 과잉 떡볶이의 맛이 난다.
아니다. 오히려, 시어머니 필은 화면에서보다는 대사에서 거의 유치찬란의 수준으로 드러나는데, 특히 네명
군바리의 마지막 파티에서 이수혁이 뜬금없이 던지는 대사 "정말 전쟁이 나면.. 우리두 서로 쏴야 돼?"는
그중 최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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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잘
나가다 초를 치는 이 대사를 뭔 명대사라구 찌라시에꺼정 박아놨다냐.. |
또한 영화 허리부분이 너무 길다. 즉 군발스들이 우정을 쌓아가는 과정을
그렇게 장황하게 늘어놓을 필요는 없었다구 본다. 물론 얘덜이 실탄, 초코파이, 훌떡잡지, 닭쌈,
팔씨름 같은거 가지고 알콩달콩 노는 장면은 그 자체로 재밌긴하다. 그리고, 이것이, 북한 군발스들을
"이념을 뛰어넘어" 인간적으로 보이게 만드려는 의도였다는 것도 알겠다. 하지만 그 흘러넘치는 의도는
오히려 영화를 촌스럽게 만들었다.
이 대목에서 본 위원은, 미군 진지 앞에서 독일 군발스들이 양초로 불 밝힌 크리스마스 트리를 만들어놓고
소나무(Tannenbaum)를 부르던, 정말 눈물이 나도록 가슴 뜨근한 <휴전>의 한 장면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적'을 '인간'으로 만들고, 등장인물들 뿐이 아닌 관객들마저도 마음을 열 수 있게 하는데에는
그렇게 많은 말과 MT용 께임이 필요하지 않다는거다. 전쟁광 살인귀인줄로만 나찌놈들 진지로부터
수류탄 대신 날아든 눈뭉치, 그것으로 촉발된 '눈싸움 전투'만으로도 '양키'와 '나찌'는 친구가 될 수
있지 않았었나.
이것 말고도, '정우진 전사(신하균 분)'의 "...죄송합네다!"로 대표되는 영화의 분위기와 걸맞지 않는
돌출적 오바개그, '남성식 일병(김태우 분)'의 성격이 충분하게 설명되지 않았다는 점 등도 아쉬운 한 판
이었다.
결론
이 대목에서 우리가 잊지말아야 할 것이있다.
그것은, <JSA>의 완성도가 상업영화라면 응당 지켜줘야 할 기본에 충실함으로써, 그리고 그걸
실현시킴으로써 가능한 것이었다는 사실이다. 국가적 차원의 <JSA> 홍보 이벤트라고 해도 손색이 없을
정도로 기가 막히게 타이밍 맞아 떨어진 남북관계 변화 덕분에 엄청나게 증폭된 흥행성적이 아니다.
이 넓은 세상에는 '영화 시나리오는 초등학교 국어교과서가 아니다', '배우는 연기를 하는 사람이다',
'CG는 하나의 표현 수단일 뿐이다'같은 기본을 개무시하는 영화가 국적을 초월하여 너무나 많다. 하지만
이것이 <용개뤼>, <비천무>등의 쒯덩어리들이 흥행성적 하나만 믿고 '역시 잘 만든 영화는 평론가보다는
관객이 먼저 알아본다'등의 헷소리를 삐약삐약 하며 주디를 놀릴 수 있는 조건이 될 수는 없다는 건 자명하다.
따라서 우리가 <JSA>를 평가하는 기준이, 재래식 언론 나부랭이에서 일제히 나발을 불듯이 "<JSA>,
과연 <쒜리>의 흥행성적을 능가할 것인가"같은 꼴깝이 되어서는 안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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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쒸네
21> |
<좃선> |
영화판의
대표적 재래식 언론, <쒸네21>과 <좃선찌라시>의 기사
이런 필 기사 쓴 건 얘덜 뿐이 아니다. 초록은 동색이라고, 어쩌면
이렇게 노는 꼬라지들이 똑같다나.. |
흥행성적을 영화를 평가하는 하나의 잣대로 끌어들이는 이런 용개뤼 방구뀌는 필의 싸운드는, 허구허날 <쥐라기
공원> 흥행수익하구 우리나라 자동차 수출액하구 비교하는 고위급 꼴통들하구 니덜끼리 다정하게 나누기 바란다.
<JSA>의 흥행성공이 우리에게 주는 희망은, 덕분에 꽤 올라가게 될 '한국영화 시장점유율'
따위의 또라이 숫자놀음이 아니다. <JSA>의 흥행성공이 희망적인 것이라면, 그것은 '흥행에
성공하려면 우선 기본을 잘 갖춘 영화를 내놔야 한다'라는 당연하기 이를데없는 원칙이 우리나라 영화판에서
먹혀 들어갈 수 있으리라는 가능성을 던져주기 때문이다.
우리는 흥행에 성공한 영화를 만들어내기 위해서 극장에 가는게 아니다. 우리는
잘 만들어진 영화를 보기위해, 그것이 뭐가 됐던 '본전'을 뽑기위해 극장에 가서 영화를 보는 것이 아닌가.
이건 <JSA>가 보여준 '북한에도 사람이 살고 있다' 만큼이나 당연한, 그러나 그만큼이나
자주 개무시되는 명제다.
- 딴지 영화진흥사령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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