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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펙트 스톰>에 대한 검열결과 보고
2000 8월
세째주
우리가 흔히 '재난영화'라고 부르는 일련의 영화들이 대박시즌마다 끊임없이 등장하는 이유는 과연 무엇인가.
이에 대해서 다양한 영화학적/심리학적 가설이 제기될 수 있겠으나, 이들 영화들이 인간 무의식의 저변을 규정하고 있는 가장 근원적인 욕망이라 할 수 있는
'강건너 불구경 컴플렉스'를 충족시켜주기 때문이라는, '복지부동 무사안일'설이 가장 설득력있는 이론이라 사료된다(따라서 '재난영화'라는 용어는 단순히 영화의 소재만을 지칭하는 부정확한 용어인 바, 본 공사는 이를 폐기하고
'불구경 무비'라는 용어를 채택하기로 한다).
우쨌던, 지금까지 대박씨즌에 맞춰 개봉됐던 불구경 무비들은 대부분 스스로가 재난이 됨으로써 자신의 컨셉을 충실히 재현한 영화들이었다 할 수 있겠다.
불구경 무비들이 이러한 살신성인 정신을 실천한 것은, 빵빵한 특수효과 기술력으로 있는 재난 없는 재난 다 만들어내면 적어도 기본 대박을 칠꺼라는, 조로아스터교에 필적하는 특수효과 숭배사상이 배후에 깔려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었다.
그리고 거의 태풍다운 태풍, 장마다운 장마 한 번 오지 않았던 올해에도 어김없이 왔다. "거대한 액션폭풍이 몰아친다!"는
진부하다못해 신선하기까지 한 카피를 달고, 태풍영화를 가장한 불구경 무비 <퍼펙트 스톰>이 왔다.
인트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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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게
헐리우드 대박영화의 한 장면 이라고
누가 생각할 것인고.. (화살표 아래는 카메라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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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이 영화는 그 시작에 "야부리 아님(A story based on a true story)"이라는 자막을 깔아둠으로써
기존 불구경 무비들과 차별성을 긋는다. 최근 3년 동안 양산되었던 허리케인, 화산, 폭우, 혜성 등 있는재난 없는재난
억지로 만든 영화들과는 뭔가 다를꺼라는 냄새를 풍긴다는 얘기다.
아니나 다를까, 이 영화는 기름 냄새와 비린내와 땀내로 쩔어보이는 어부들이 대가리 뎅거덩 날라간 고기들을 배에서 내리는 꼬질꼬질한 인트로로 시작된다. 영화내내 주리장창 깔리는 <클리프 행어>풍의 존나게 유장무쌍한 오케스트라 뮤직만 아니면, 좀 깔끔하게 만든 다큐멘터리 같은 느낌을 줄 정도다.
의상과 분장만 보더라도 이런 '리얼'함에 대한 의도는 확인된다. 조지 클루니를 포함한 모든 등장인물들은 기본적으로 한 10년은 입은듯한 나달나달하고 때에 바랜 의상을 걸치고 나온다. 어부라기 보다는 부랑자에 가까와 보이는 '벅시(존 혹스 분)'는 손톱에 시꺼먼 때까지 낑구고 등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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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이안
레인
이젠 늙기도 많이 늙었다.. |
그 옛날, <스트리트 오브 파이어>로 피비 케이츠, 소피 마르소와 함께 청춘 쭉빵계의 간판 트로이카를 이루었던 다이안 레인도 남대문 시장 필의 추리닝같은 옷을 입고, 볼따구 뻘건 시골스러운 분장을 하고 머리는 산발을 해서 선착장을 내달린다. '내일 지구가 망하더라도 나는 오늘 한 점의 트윈케익을 찍어바르겠다'를 최우선 좌우명으로 삼고 있는 김히선 류의 배우를 가장한 모델들에게는 절대 불가능한 그런 분장을 하고 말이다.
덧붙여, 이야기 덩어리가 일단락 될때마다 화면 아랫쪽에 지명을 알리는 자막을 넣음으로써 실화적인 분위기를 풍겨주는 얍실한 배려도 물론 잊지 않는다.
"사실성이 모든 일에 우선하는 마빡이다(reality is the headline above everything)"라는 감독 볼프강 피터슨의 의도는 이런식으로 실현되고 있다.
파도
하지만 이 영화가 보여주는 사실성은 이렇게 단순하고 저렴하고도 꼬질꼬질한 세부묘사에만 국한되어 있진 않다. 당연하다. 제 아무리 리얼리티를 추구한다 하더라도 명색이 헐리우드 대박영화다. 이 영화의 '리얼리티'는 이탈리아 네오 리얼리즘류의 그런 '리얼리티'와는 전혀 거리가 멀다.
다들 아시리라 믿는다만, 이 영화의 리얼리티는 ILM의 CG로 만들어진 높이 30미터의 파도(라기보다는 태산)에 맞춰져 있다. 그리고 과연 감독의 공언대로 이 영화가 만들어낸 폭풍은 '퍼펙트'란 단어가 전혀 아깝지 않을 정도다.
(주)
영화가 시작한지 30분쯤이 지나서부터 슬슬 그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하는 파도는 과연 거의 모든 관객의 다리떪과 팝콘 봉다리 뒤지기를 완전히 멈추게 하기에 충분하다. 번개가 번쩍거릴때마다 슬쩍슬쩍 그 압도적인 울렁거림을 보여주는 파도의 산맥은 과연 올해 최고의 시각효과라해도 과언이 아니다.
특히, 표면에 흰색 거품이 그물모양으로 생기는 바닷물의 질감과 강풍으로 휘날리는 말 갈기같은 파도 꼭대기의 흰 안개를 표현해내는 솜씨를 보라. CG로 가장 표현하기 어렵다는 물을 이 정도로 표현해낸 것만 보더라도 이 영화의 기술적 완성도는 <다이너소어>의 호들갑을 압도하고도 남음이 있다.
여기에 고양이 비명소리 같은 일진광풍 싸운드와 파도가 뽀개지는 폭발음 싸운드 등의 음향효과가 가미되면 감독이 얘기했던 '리얼리티'의 정체가 까발켜진다. 그 '리얼리티'란 '버추얼 리얼리티'의 그 '리얼리티'에 다름이 아니다.
마인드
하지만 이 영화의 특수효과를 훌륭한 것으로 만드는 것은 그 기술적 완성도 자체보다는, 그걸 써먹는 마인드다.
"헐리우드판 리얼리티('Hollywoodized' version of reality)"를 배제하려고 했다는 촬영감독 존 실의 말 마따나, 이 영화는 황당무계의 선을 넘어가지 않는 절제를 보이고 있다. 즉, 이 영화는 자신의 기술력에 스스로 감동먹은 나머지, 뭔가 존나게 신기한 볼거리를 만들어야겠다는 의욕에 넘쳐, 급기야 유치찬란의 대열에 합류하고 마는 오바질을 자행하지 않는다는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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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떼돈 들여서 이딴 감자탕 건데기
만들 생각한 넘이 더 무섭다 |
대표적인 예로, 초반에는 나름대로 잘 나가던 <헌팅>이나 <엔드 오브 데이즈>같은 영화들이, 뭔가 화끈한 걸 보여줘야 한다는 중압갑을 이기지 못하고 결국은 감자탕 뼈다귀같은 괴물을 내놓음으로써
순식간에 쒯덩어리의 대열에 합류하고 마는 것을 보라.
허나 <퍼펙트 스톰>의 폭풍은 폭풍이라는, 등장인물들은 인간이라는 자신의 신분을 끝까지 잊지 않는다.
보라. 포스터의 파도는 이 영화의 초절정 클라이맥스에서 등장하는 마빡 파돈데, 보시다시피 기냥 존나게 큰 파도일 뿐이다. 결정적인 부분에 가서도 괴물 같은거나 버섯구름 피어오르는 폭파씬 같은거 안 나온다는 얘기다.
또한 영화의 곁다리 스토리에서는 뽀다귀나는
길이 65미터의 해안 순시선('Tamaroa'), 해난구조 헬기(HH-60
PAVE Hawk), 공중급유를 위해 적외선 카메라를 쓰는 파일럿들이 등장하는데 결국 이들은 모두 어마어마한 폭풍앞에서 버벅거리는 인간의 선을 넘어서지 않는다. 좀 멋져보이는 장비만 나오면 도끼눈 뜨고 그에 상응하는 후까를 잡아줘야 직성이 풀리는 많은 한국 영화들이 배워야 할 점은 바로 이런 마인드라 사료된다.

이 영화의 시각효과 고문관 스티븐
팽마이어란 넘은, 모든 장면을 겁나게 장대하고 무시무시하게 보이고 싶어하는 감독한테 개기던 당시를 회상하면서 이딴 발언을 한다.
"모든 장면을, 우리가 할 수 있는 만큼 최대한 인상적으로 만들려고 하지 않는 것이야말로 가장 후달리는 일이었다"
"공부가 제일 쉬웠어요"필의 이 느끼만빵의 발언에 대해, '그래요, 너 존나게 잘났어요'라고 일갈할 수도 있겠지만, 이 말은 좀 새겨들을 필요가 있다.
도대체 다음엔 뭐가 튀어나올지 모를 기술력을 가진
헐리우드 넘들도, 특수효과에서 중요한 건 "나
이런거뚜 할 줄 안다, 놀랬쥐?"가 아니라는 걸
염두에 두고있다는 얘기니까 말이다.
스토리
우쨌든, 이 영화는 관객들의 관심이 "기상학 사상 100년만에 한 번 있을까 말까한 태풍"을 얼마나 실감나게 보여주는가에 맞춰져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그리고 그 부분을 부족함이나 오바없이 충분히 충족시켜주고 있다.
하지만 역시 중요한 것은 이야기다. 뭐니뭐니해도 불구경 무비가 스스로 재난이 되는 지름길은 재난만 실감나게 보여주고, 그 안에서 뛰노는 인간들이나 그들이 만들어내는 스토리를 초현실적으로 만드는 것이 아니던가. 우리가 람보 나오는 태풍 뉴스속보를 보러 극장에 가는건 아니란 말이다.
다행스럽게도, <퍼펙트 스톰>에서는 람보가 출연하지 않는다. 스필버그류의 자애로운 가족 박애주의자도 나오지 않는다. 그저 어부는 슬럼프를 극복하고 한 몫 잡아서 자길 개무시하던 사람들에게 뭔가를 보여주고 싶을 뿐이고, 어부의 애인은 그걸 잘 알고 있기 때문에 "이번이 마지막이야"라는 애인의 닳고닳은 대사앞에서 화를 내면서도 그를 다시 보낼 수 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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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Let's
make some money.. (주) |
그리고 '안드레아 게일'호에 탄 주인공들은 찬스만 나면 "돈 한 판 벌어보자구(Let's make some money)"를 기도문처럼 중얼거리고 서로 고개를 주억거린다. 슬럼프에 빠진 선장('빌리' 조지 클루니 분)의 눈치를 보면서도, 고기 안잡히니 고마 돌아가자고 집단적으로 개긴다. 마누라를 뺏어간 넘 '설리(윌리엄 피치너 분)'와 같은 배를 타게 된 '머피(존 C. 라일리 분)'는 뻑하면 애들처럼 치고 받고 싸운다.
우리가 어떤 이야기에 감동, 아니 적어도 공감을 하는 것은, 그 이야기가 엄청 기발하고 신기한 것이기 때문은 아니다. 그 이야기가 어떤 방식으로든 우리 삶의 한 부분과 맞닿아있기 때문이 아니던가.
어마어마한 갈등같은 것도 없다. 극적이고 휴먼미 넘치는 화해같은 것도 없다. 그냥 고기 많이 잡아서 돈 좀 더 벌어고 싶은 사람들만이 있을 뿐이다. <퍼펙트 스톰>이 "Hollywoodize"하지 않으려고 한 건, 특수효과에만 국한되는 얘기는 아니었던 거다.
그리고 사실은 이것이 '큰 껀 하러 먼 바다에 나간 어부들이 어마어마한 폭풍을 뚫고 지나가는 과정에서 그야말로 악전고투 하는데..'외에는 뚜렷한 줄거리라는 것을 가지고 있지도 않는 이 영화를 설득력있는 것으로 만드는 가장 큰 요소다.
단점
하지만, 폭풍이 가라앉고, 피해를 보도하는 뉴스앵커의 목소리가 흘러나고, 그 섬찟한 폭풍속을 빠져나와서 정신을 차릴때
쯤 되면 뭔가 좀 허전하다는 느낌이 든다. 그 가장 큰 이유는 태풍 속의 인물들이 그 무시무시한 태풍 앞에서 지나치게
혼연일체루다가 용감했기 때문이라고 생각된다.
주인공들, 즉 '안드레아 게일'호의 어부들이 워낙에 무대뽀 어부들인데다가 오랜만에 올린 큰 껀을 빨리 고향으로 가져가고 싶은 마음뿐이니까 "다뎀벼!" 필을 유지할 수 있었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러나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6명 중 적어도 한 명 정도는 그 공포앞에서 갈등을 때리거나 눈이 살짝 뒤집혀주는 것이 예의가 아니었을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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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거,
너무들 의연해.. 들.. |
또 하나의 결정적인 패착은 음악이다. 물론 <타이타닉>, <딥 임팩트>, <마스크 오브 조루>의 음악을 맡았던 제임스 아너라는 넘이 작곡한 테마곡은 괜찮다. 하지만 문제는 그게 시도때도 없이 주리장창 도배질 된다는 사실이다. '자, 이 장면에서는 이런 감정을 느껴야만 하는도다'라고 소리높여 주장하는 시건방이 대지를 울리는 음악이야 뭐 헐리우드가 다 그렇지하며 너그러이 참아줄 수 있다..고 해도, 이게 끝도 한도 없이 주리줄창 계속 나오면 용서가 어렵다. 영화 속 푹풍이 본격적으로 시작되면 이런 음악 나부랭이야 까맣게 잊게 되긴 하지만 말이다.
또한 막판 '바비(마크 월버그 분)'의 대사와, 이것을 꿈에서 들었다고 시어머니에게 증언하는 그의 애인 '크리스티나(다이앤 레인 분)'은 좀 신파로 흘러버린 경향이 없지 않다.
하긴, 감독이 81년에 만든 걸작 <U-보트(Das Boot)>의 결론처럼, '천신만고 끝에 간신히 살아돌아온 잠수함 대원들이 귀환 환영식장에서 공습을 받고 죽는다'는 엄청 안 헐리우드적인 결론을 내려버리면 관객들이 그 당황스러움을 감당하기는 심히 어려울 수도 있었겠지만 말이다.
결론
어쨌든, <퍼펙트 스톰>은 헐리우드 대박영화하면 일반적으로 떠오르는 '오바질 특수효과', '초현실주의적 인물', '개연성 개무시', '구라 도배질', '어설픈 유머' 등의 함정을 잘 피하고 있다. 특수효과 만빵의 헐리우드 대박이라면 일단은 도끼눈뜨고 '니가 돈 좀 있나본데, 월매나 잘하나 함 보자'필로 팔짱끼고 노려보는 고매하신 기자분들에게야 기껏해야 "볼 만 하다"는 얘기밖에는 못 듣겠지만 말이다.
사실, <퍼펙트 스톰>은 우리의 삶의 한 부분을 은유해주는 영화로서도 나름대로 훌륭하다.
잡힐듯 눈 앞에 떠 있는 정체를 알 수 없는 희망을 향해 남은 힘을 쥐어짜고, 별의별 일들을 다 겪으면서 목표지점에 도착하지만, '꿈'은 여전히 저 앞에 둥둥 떠 있을 뿐이다. 그러면서도 "이번이 마지막이야"를 중얼거리면서 다시 한 번 홀쭉해진 치약 튜브를 쥐어짠다.
안다. 흔해빠진 얘기다. 하지만, 우리 사는 꼬라지라는게 대부분 '안드레아 게일'호의 선원들의 고기잡이 스토리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 그런 것이 아닌가. 포스터의 그 집채만한 파도와 맞짱을 뜨면서 "씨바, 그래, 어디 함 뎀벼봐라~!"라며 엔진출력을 최대로 올리는 '빌리'와 '바비'가 마냥 미친넘들로 보이지만은 않는 건 바로 이 때문일 것이다.

행간의 숨은 의미 해석으로만 책 한권 쓸 수 있을 정도로 심오찬란한 영화는 아니지만, 극장문을 나서서도 여전히
가슴 벌렁거리는 재미에다 이런 것들을 거침없이 실어냈다는 것만으로도 <퍼펙트 스톰>은 극장에 가서 볼만한 괜찮은
영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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