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룰스 오브 인게이지먼트> 신문광고 검열결과
(이하 검열 소견)
제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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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열부위 제1호] |
금번 여름 대박 시즌 개봉 영화 중
10글자로 최다 글자수 기록을 세우고 있는 <룰스 오브 인게이지먼트>의 번역 수준은 과거
97년 <데블스 애드버킷>의 수준에 거의 필적한다고 보여진다.
"악마의 변호사"라고 번역하면 절라 알아듣기 쉬울껄, 굳이 발음 나는 그대로 "데블스 애드버킷"이라고 제목을 적은 것은 다음과 같은 이유에서 였다고
분석되었다.
1. "악마의 변호사"는 "단장의 미아리고개", "별들의 고향"등의 6, 70년대풍 제목의 구문
구조를 그대로 차용한 바, 심히 그 느낌이 구리다.
2. 웬지 한글 제목보다는 영문 제목이 '대박영화'적인 냄새가 더 난다(이 영화에서 알 파치노와 키아누 리브스라는 두 대박배우들이 주연을 맡았던 점을 상기하라).
3. "애드버킷"이라는 영문 단어는 그 난이도가 일반인들의 영어수준과 쉽사리 사맛디
아니할새, 그 단어의 뜻에 대한 자연스러운 토론을 유도함으로써 구전 홍보효과를 노릴 수 있다.
당해 영화 <Rules of Engagement>가 그 제목을 "교전 수칙"이라구 번역하면 다들 잘 알아먹을 것을, 굳이
이두 향찰의 표기법을 도입해 "룰스 오브 인게이지먼트"라 번역한 것 또한 위와 같은 이유에서였다고 사료된다.
특히 당해 영화의 경우. 그 중 2번 이유에 가장 큰 비중을 두었다고 사료된다. 두 주연 배우가 <데블스..>의 경우와 같이 나름대로 꽤 지명도 있는 배우인데다가, 본 영화의 개봉 시기가 가뜩이나 대박영화들이 몰리는 여름방학 시즌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본 영화는 대박영화('블록버스터'라고 불리기도 함)의 일반적인 특징을 거의 갖추고 있지 아니하다.
헤드카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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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열부위 제2호] |
이러한 이유로 당해 영화는, '절이 싫으면 스님이 떠나는' 필이 아닌 '스님이 절을 뜯어 고치는' 필로 아예 "블록버스터의 룰을 (아예 새로) 제시한다!"라며 기염을 토하고 있다.
무릇 '대박영화(블록버스터)'란, 현재 제일 잘 나가는 스타 기용하고 시각적 스케일 키우고 특수효과 쳐바르고 해서 결과적으로 떼돈을 들임으로써 대목 시즌에 떼돈을 긁어 모으고자 하는 영화를 지칭한다.
최근 아닌 대박영화들이 스스로 대박영화를 사칭하고 다니는 이유는, 바로 대박영화들이 가진 이러한 '초특급 버라이어티 초호화 어드벤쳐 스페샬 SFX 이벤트'적인 냄새를 풍겨보려는 의도에서라는 것이 학계의 정설이다.
당해 영화의 경우 또한 이 경우에 해당된다. 단, 위에서 언급했듯이, 본 영화는 탁 까놓고 "블록버스터"라고 주장하기에는 아닌 구석이 너무 많으므로 "아예 블록버스터의 정의를 바꿔버리겠노라"라는 뜻을 내포한 헤드카피를 도입하고 있다.
물론 어찌되었든, "블록버스터"라는 단어를 도입함으로서 살짝 대박영화의 냄새를 풍기는데 성공한 그 노련함은 매우 수준급이었다
사료된다. 반면에, "룰을 제시한다!"는 무리수까지 둬가며 어떻게든 대박영화의 반열에 낑궈 들어가보려는
노력은 실로 눈물겨운 것이었다.
포스터 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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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열부위 제3호] |
포스터에서 사용하고 있는 사진 이미지를 보면, 당해 영화는 전형적인 대박영화의 조건을 고루 갖추고 있는듯 보인다.
1. 우선 유명배우의 얼굴이 우측 상단에 대문짝만하게 박혀 있다.

2. 그 아래에 시뻘겋고 희번뜩한 불바다가 화르르 타오르고 있다 : 장렬한 폭파씬 예상
3. 그 불바다와 검은 연기의 상공을 헬기 두 대가 비행하고 있다 : 장렬한 폭파씬이
나오는 화끈한 전투씬 예상
4. 그 한 가운데에, 어떤 애새를 안은 군발스가 우뚝 서 있다 : 장렬한 폭파씬이
나오는 화끈한 전투씬에서 꽃피는 처절한 휴머니즘 예상
이러한 이유로, 당해 광고물은 당해 영화에 대해 "뭔가로 갈등하는 두 전쟁영웅이 서로의 명예와 대의명분을 지키기 위해 엄청난 스케일의 전쟁을 벌이는 전쟁 액숀영화"라는 인식을 불러일으킬 소지가 다분하다.
본 광고가
그러한 오해를 의식적으로 의도하고 있다는 것은 토미 리 존스의 얼굴 아래에 있는 "예매대전쟁 돌입"이라는
문구에서 확인된다.
허나, 문제는 당해 영화가 결코 스케일 엄청난 전쟁영화가 아니라 법정영화라는 점에서 발생한다.
물론 영화는 초반 30분 동안 68년의 베트남과 1999년의 예멘을 배경으로 무척 실감나는 전투씬을 보여준다. 예멘의 경우는
감히 '전투'라고 부르는 것이 불경스러운, 미 합중국 대사 부부와
미국 시민을 예멘의 야만스러운 폭도로부터 구출하고 성스러운 성조기도 함께
탈환해오기 위한 성전이었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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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위의 애새는 예멘주재 미 합중국 대사의
아드님이신걸로 발켜진다 |
어쨌든, 초반 30분은 무척 실감나는 시각효과를 보여주는데, 전투신은 이걸로 땡이다. 헬기도 예멘에 특공대를 날라다주는 뻐스같은 역할밖에 하지 않는다. 예고편에 나온 항공모함은 그 헬기의 주차장 역할 이상도 이하도 하지 않는다. 게다가 광고속의 대폭발 씬 같은 건 절대 안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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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를
다 보고 위 그림을 보면 '이런 장면이 언제
나왔더라?'하는 얘기가 절로 나온다 |
그 초반의 실감나는 전투씬 30분이 지나고 나면, 나머지 한시간 반 동안은 이렇다.
미 합중국 군인과 미국 시민을 보호하기 위해 예멘 폭도들을 싹쓰리 했던 위대한 미 합중국 해병대 대위 '칠더스 대령(사무엘 잭슨 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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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산 잔다르크 '칠더스 대령' |
얘를 작전에 투입하고서도 나중에는 도리어 국제여론 무마용 희생양으로 삼으려고 하는 미 국무성의 절라 나쁜 넘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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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닌게 아니라 좀 싸가지 없게 생긴 애덜로 캐스팅이 됐다 |
그 둘 사이의 째바리가 안되는 싸움에, 친구를 위해 변호를 나선 '하지스 대령(토미 리 존스 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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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산 잔다르크를 친구로 둔 덕에 위대한 군인정신을 회복하는 '하지스 대령' |
즉, 미국산 잔다르크 사무엘 잭슨을 둘러싼, 줄거리 책 허겁지겁 읽어주는듯한 필의 재판과정이 나머지 한 시간 반의 전부를 차지한다.
그나마 치밀한 논리와 막후의 암투, 인간적 고뇌 그리고 극적인 반전 같은 법정영화 특유의 묘미도 거의 나오지 않는다. 그 대신 '조또 모르는 먹물들 나부랭이가 신성한 군인 정신을 감히 더럽힐 수는 없다!"라는 구호만이 증거물로 제시된다.
그리고 결국, 어떻게 그렇게
되었는지는 아무도 설명해주지 않지만, 이 증거물의
강력한 파워로 인해 미 합중국의 강인한 군인정신은
승리를 거두고, 감히 이들한테 개기던 나쁜 넘들은
일벌백계를 당한다. 그리고 이 승리는, 칠더스가 예전
월남전 당시 미 합중국식 박애주의로 살려줬던 월맹군 장교 출신 아저씨의
국경을 초월한 충정 절절히 담은 거수경례로 인해
글로벌한 레벨로 승화된다.
덕분에, 이 영화속의 재판은
딴지영진공 영화법에 의거한 '법정영화 모독죄'가 성립될 수 있는 요건을 충분히 갖추고 있다고 보여진다.
허나, 본 소견서는 영화가 아닌 광고물에 대한
소견서이기 때문에 더 이상의 언급은 생략하도록
하겠다.
마지막으로 덧붙이면, 영화속의 재판이 보통 재판이 아닌 군법회의였기 때문에 그렇게 무대뽀 또라이스러울수도 있다는 반론이 제기될
수 있겠으나, 다음과 같은 이유로 무시한다.
<어 퓨 굿 맨> 같은 영화는 안 그랬다.
새끼카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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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열부위 제4호] |
이상이 '시원치도 않고 시덥지도 않은 법정영화'인 당해 영화의 신문광고에 '법정' 또는 '재판'등의 단어가 사용되지
않고, 대신 엄한 "블록버스터"등의 단어가
사용된 경위이다.
결국, 본 광고물은 "박스 오피스 2주 연속 1위"(각주해설)나 "<딥 임팩트> <트루먼 쇼> 제작진"(각주해설)같은, 영화 자체와는 별 상관없는 새끼 카피로써 대박영화의 냄새를 풍기기 위한 최선의 노력을
경주하는 전략을 택하고 있다.
"총 제작비 70,000,000,000"이라는 마무리 새끼카피는 이러한 노력의 정수다.
이 카피에서 "700억"이 아닌, 공 열개가 줄줄이 사탕으로 붙은 숫자가 굳이 사용된 이유는, 이제 굳이 언급하지 않아도 추론이 가능할 것이라 짐작되므로 생략한다.
어쨌든, 이 화룡점정으로 당해 영화가 '대박영화'로 용틀임 할 수 있을 것인가?
그건 아니라고 사료된다.
왜냐.
단위가 빠졌자너.
70억 딸라냐, 페소냐, 파운드냐, 마르크냐, 루블이냐, 위안이냐, 엔이냐, 원이냐, 냥이냐. 당해 영화측은 그것을 명확히 발켜주기 바란다. 그래야 대박 영화에 걸맞는 대박 제작비의 면모가 제대로 과시될 수 있을
것이 아닌가.
결론
영화가 이리도 쒯덩어리인 마당에는, 위와 같은 신문 광고로도, 서울 관객 50만, 100만 돌파할 때 미제 찝차 한대씩 선물로 준다는 초현실적 이벤트로도, 관객들의 눈을 속일 수는 없다. 물론 이 영화에 서울 관객만 50만이 들꺼라는 기발한 상상력에는 경의를 표하는 바이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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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간
동그라미 안의 "서울"이라는 문구에
주목할 것 |
물론 홍보를 하는 입장에서는
탁 까놓고 "2000년, 새롭게 만나는 미국산 <배달의
기수>!"와 같은 카피를 붙일 수는 없을 것이다.
또한 대좃급 대박영화들이 줄줄이 사탕으로 포진해있는
여름 시즌에, 관객들에게 호소할 만한 요소를 거의
갖추고 있지 못한 당해 영화를 어떻게든 띄워야하는
고충 또한 충분히 이해하는 바이다.
하지만 관객은 바보가 아니다.
게다가 요즘같이 인터넷이 활개치는 시대에는, 아닌
법정영화 뽀다구나는 블록버스터로 포장을 한다한들
뽀록나는건 순식간이다. 따라서 이런 광고는
장기적으로 볼 때 관객과의 신뢰만 잃을 뿐인 패착이라
사료된다.
아무리 장사가 중요하다
하더라도, 영화제목도 명색이 "교전수칙"이니 만큼, '영화의 전체적인 내용과 분위기와는 동떨어진 이미지를 과도하게 부각시켜 관객을 우롱하지 않는다'는 관객과의 교전수칙은 엄수해야
할 것이다.
이에 본 검열위는 당해 광고물에 대해 엄정한 교전수칙 엄수와 조속한 시정조치를 촉구하는 바이다. 이상.
- 딴지영진공 광고물 검열위 산하
신문광고 검열분과장 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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