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아나키스트>를 접선하였소

2000. 5.13. 토요일

 

'갑빠무비'라는 불멸의 장르가 멀리는 신셩일, 이덕하, 가까이는 최민스로 그 명맥을 유지해오는 동안, 조선의 갑빠계는 장 꼴려도 반담, 스티븐 시발등의 서역 출신의 갑빠고수들의 끊임없는 도전을 받아왔었소. 하지만 로키산맥같이 굴곡이 심한 갑빠보다는 백제의 미소같은 부드러운 곡선의 완만한 갑빠를 선호하는 우리 민족의 운치넘치는 취향에 의해 조선 갑빠계는 꿋꿋이 그 전통을 유지할 수 있었소.

허나, 그 불굴의 역사 속에서 조선 갑빠무비계가 자신의 영역을 외세의 손아귀에 넘겨주고 말았던 암흑의 시기가 있었으니, 그것은 바로 인근 홍콩국의 주윤발이라는 복병이 순식간에 강호를 잠재웠던 80년대말이다는 걸 동지들은 기억하시리리 믿소.

주윤발로 인해 조선의 갑빠고수들은 그 설땅을 잃었으며, 최민스 같은 기존 고수들은 <결혼이야기>같은 코미디 영화에 출연함으로써 간신히 그 목숨을 부지할 수 있었소. 그렇소, 그것은 너무도 암울한 시대였소.

이자요.. 주윤발이라는 자..

조선 갑빠무비계가 홍콩국의 치하에 놓였던지 어언 10여년.. 이제는 조선의 갑빠고수들이 다시금 그 평평하고도 완만한 갑빠를 드러내며 다시금 강호를 뛰노는 태평성대가 도래하였소. 현재 조선 최고의 갑빠대인으로 군림하고 있는 최민스가 지난 4월 거행되었던 대좃상 시상식에서 최우량 갑빠대상을 거머쥠으로써, 조선 갑빠무비계를 외로이 지켜온 공로를 공식적으로 인정받았던 사건은 이러한 태평성대를 반증하는 일이 아니고 그 무엇이겠소.

그리고 이제 우리 대한국인들은 새롭게 부상하는 갑빠계의 신성을 목도하오. 이번엔 떼거지로 몰려나온 갑빠맨들. 그들은 조선 갑빠계의 새로운 세대, '갑빠 제3세대'가 도래하였음을 후까시 만빵의 포스터를 통해 이미 예고하고 있었소. 

"당당한 그들이 온다!"

오오..

도도하게 흐르는 한강수와도 같은 도도한 마빡간판을 걸고 나온 그 당당한 제3세대 갑빠무비.. 

그 제목하여 <아나키스트>.

하지만, 동지들여. 본 기자는 애통한 마음 금할길이 없소.. 버선발로 극장에 달려나가 이들의 현실을 목격하고 온 본 기자, 조선 갑빠계의 미래가 그리 밝지만은 않음에 그저 망연자실 분루를 삼킬 수 밖에 없었소.

장동건, 정준호의 코트자락 휘날리는 권총질에 일본넘들이 쓰러져가는 <장군의 아덜>적인 장면을 상상해 마지않았던 수많은 갑빠무비팬들은 <아나키스트>가 보여준 빈약하디 빈약한 갑빠에 실망을 금치 못했으며, 전반 30분도 채 안돼서 "허무주의적 인텔리겐챠"이자 이 영화 갑빠의 중심인 장동건이 마빡에 총 맞고 장렬히 전사해버리는 설정에 이르러서는 쓰라린 경악감을 맛보고야 말았소. 

그렇소. 가득 자리를 메워진 객석의 그 침묵과 한숨과 탄식은 장동건의 "허무하고 불꽃같은" 죽음을 애도하기 위한 것은 결코 아니었소이다. 

그나마 그의 갑빠는 홍콩국 치하의 암흑기, 온통 우리나라를 뒤덮고 있던 주윤발의 갑빠모델을 그대로 복사해 온 갑빠가 아니었소이까. 특히 장동건이 쌍권총들고 적진을 향해 하늘날으는 장면에서는, 꼬나문 담배에서부터 무쓰에 흐트러지는 머리카락 하나까지 속속들이 주윤발의 갑빠 그 자체가 아니었소.

아.. 강호를 버리고 홀연히 머나먼 서역땅으로 떠나간 주윤발이라는 갑빠 거인의 빈자리를 메워보려는 장동건의 눈물겨운 투쟁.. 그의 갑빠가 월남국에서는 그 옛날 조선에서의 주윤발 못지않은 각광을 받고 있다하니, 그 한자락 바람에 휘날리는 피빛 코트자락은 월남국에서 마음껏 휘날려져야 했던 것이라 사료되었소이다.

더하여 지나간 연애질 무비 <러브>에서 보기만해도 괴로운 "씹쌔"타령을 흐드러지게 불러제끼던 이범수는, 이 영화에서 또 한번 끊임없이 실패하고 또 실패하지만 꿋꿋이 다시 일어나는, 그러나 역시 또 실패하고 마는 완패개그의 참모습을 보여주었소.

관객의 감정보다 항상 앞서 나가던 그의 "불의를 보면 참지 못하는" 표정연기의 오바는 이제 일가를 이룬 경지가 되었으니 객석의 동지들은 완전 도탄에 빠진 형국이었소.

정준호.. 아.. 찌라시에는 "낭만적 휴머니스트"라구 돼 있는 그의 모습이, 본 기자는 거의 기억나지 않소. 본 기자는 왠 일인지 붉은 피 흐르는 지옥같은 거리에서, 그가 뭘 하고 돌아다녔는지 잘 기억이 나지 않소이다. 

장동건을 목숨바쳐 사랑한 클럽 여가수 가네꼬(예지원 분)를 절라 추하게 따라다녔던 것도 같고, 예전에 얼굴에 총 맞은 경력이 있는 일본 경찰한테 뒤지게 쫒겨다녔던 것 같기도 하오. 뭔가를 가지고 '냉혹한 인텔리겐챠' 김상중하고 박터지게 싸웠던 것 같기도 하오. 하지만 그가 어떤 심정에서 어떤 감정을 가지고 그런 행적을 남겼는지, 우리는 결국 알 수가 없었소. 그것은 과감하게 상황 설명 따위는 생략하고 넘어가는 영화의 과단성에서 출발하였다고 보오.

어디 알 수 없는 것이 이뿐이겠소. 왜 장동건은 예지원을 미워하며 예전에 둘은 어떤 관계였는지, 형님덜을 따라다니는 쫄따구 상구(김인권 분)와 중국소녀 링링(주영 분)은 왜 아무런 예고도없이 폴링인러부위드 해버렸는지, 왜 의열단같은 테러단체에서 상구같은 어설픈 쫄따구를 들였는지, 장동건은 암살하러 간 일본 장교집에 어떻게 자기집 안방 드나들듯 잠입(?)할 수 있었는지, 장동건이 왜 "인텔리겐챠"인지, 정준호가 왜 "낭만적"인지, 본 기자는 역시 알 수 없었소.

전단지에는 이렇게 되어 있었소만..

 물론 정황적으로 볼때 이들의 행적이 전혀 앞뒤가 맞아떨어지지 않는 것은 아니오. 대략 그랬겠거니하면 이해가 되지 않는바도 아니오. 때론 이 영화에서 직접적인 설명이 나오기도 하였소.

그러나 동지들, 대부분의 상업영화에서 정말로 중요한 것은 무엇이겠소. 특히 이 영화처럼 동지들을 등장인물들에 매료되게 만드는 것이 목적인 영화에서는 무엇이 중요하겠는가 말이요. 그렇소. 줄거리를 설명하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그 등장인물들이 느끼는 감정이나 고뇌 같은것을 직접 공감하고  감정이입이 되는 것이 아니겠소이까. 

허나, 이 영화에는 그런 `인간'을 느끼게 해주는 과정들이 생략돼 있소. 그런 시도가 있었더라도 대부분 실패하고 있소. 그 자리를 뜬금없는 칼 마르크스 옹의 한 마디와 김남주 시인의 싯구 등이 대신하고 있었을 뿐이었소. 그리고 상해 독립운동사에 대한 교과서적 요약정리만이 등장인물들(특히 '냉철한 사상가 한명곤'역의 김상중)의 입을 빌어 낭독되고 있었소.

그렇소, 동지들이여. 본 기자가 이 영화에 대해 분노를 느끼었던 것은 이 영화가 유치찬란하게 주윤발의 흉내를, 그 옛날 조선을 지배했던 홍콩국의 갑빠무비들의 흉내를 냈다해서가 아니오. 그 후까시가 치사량 이상으로 과했기 때문인 것도 아니오. 무릇 후까시란 그 도가 좀 지나쳐도 캐릭터에 동화된다면 얼마든지 용납되는 것이오. 그것이 갑빠무비를 즐길 준비가 된 동지들의 기본 입장이 아니겠소.

아닌게 아니라 흉내가 좀 과하긴 하였소

하지만 <아나키스트>는 갑빠면 갑빠, 역사면 역사, 캐릭터면 캐릭터, 인간이면 인간, 사상이면 사상, 어느 하나에도 초점을 맞춰 힘있게 끌고가는 바 없이 이것 저것 몽조리 집대성하려는 무모한 시도를 감행하고 있었소. 그 집대성이 훌륭히 성공했더라면 그처럼 기쁜일은 없었겠으나, 애초에 연기력 조또없는 '아름다운 남자' 두 명을 주인공으로  박아놓았던 계획 자체가 실패의 씨앗이었는지도 모르오.

아니오, 어쩌면 이것이 이 영화를 만든 인물들의 의도였는지도 모르겠소. '그래. 그 옛날 무정부주의자들이 그랬던 것처럼 우리도 겉멋을 유지하면서 막나가보자' 이런 '주제와 형식을 일치시킨다'라는 의도 말이오.

아닌게 아니라, 나름대로 어둠침침한 느와르의 느낌을 살려주던 이 영화의 화면은 그런 의도에 어느정도 부합하는 면이 없지 않았던바 아니오. 이 영화의 시나리오를 쓴 인물중 하나인 박찬욱이 예전의 영화평에서 <영웅본색 3>가 "(영웅본색)시리즈중 최고의 걸작으로 후세에 기록될 것이다"라는 언급을 했던 것만 보아도, 이것이 단순히 본 기자의 억측만은 아닐 것이오. (주)

하지만 상업영화란 모름지기 만든 이들의 그런식의 딸따리를 위해 존재하는 것은 아니지 않겠소. 아니, 혹여 딸따리를 치더라도, 이것저것 모조리 집대성할 능력이 안된다면 하나라도 확실하게 보여주고 끝냈어야하지 않았겠소.

동지들, 본 기자는 한탄하오. 이것저것 눈치봄이 없이, 예전의 닳고 닳은 갑빠를 '오마쥬'라는 미명하에 그대로 답습하지 않고, 우람한 갑빠 하나라도 독창적으로, 그리고 제대로 보여주는 영화 한 편 만나는 것이 이리도 어려운 것이었단 말이오.

아, 동지들. 

이땅의 갑빠무비의 도가 땅에 또다시 땅에 떨어지려 하고 있소..

 

- 딴지 말초 영화부장 한동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