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본지는 긴급 여론조사를 통해, 2006 월드컵 응원가들에 대한 세간의 반응을 분석했더랬다.
(관련기사
보기) 그리고 이를 통해 우리는, 각종 재벌과 단체에서 내세운 월드컵 응원가의 난립이,국론의
분열로 이어지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이에 본지는, 남녀노소 공히 잘 알고 있는 응원가 <오! 필승 코리아>로 대표 응원가를
통일하자는 긴급제안을 공표한 바 있다.
사반세기를 향유한 <아리랑목동>의 패권에 종지부를 찍고, 2002년 일대 파란을 일으키며
새로운 대표 응원가의 권좌에 오른 <오! 필승 코리아>. 그러나 올해를 가만히 볼작시면 <오!
필승 코리아>가 불리운 곳은 지난 선거 유세판이 전부였다.
이게 대체 어찌된 일일까. <오! 필승 코리아>에게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일까.
이에 본지는, 긴급 사건 추적반을 가동, <오! 필승 코리아> 실종 사건을 파헤치기에 이르렀으니,
모쪼록 똥꼬 조아리시고 집중해 읽어주시라.
<오! 필승 코리아>가 찢어지도록 울려 퍼지던, 그 2002년의 6월을 만들어낸 장본인
중의 한 사람으로서 말이다.
<오!
필승 코리아>의 탄생
먼저, 알만한 사람은 다들 아는, <오! 필승 코리아>의 탄생과정부터 얘기해보자.
이 곡을 처음 부른 사람들은 K리그 부천FC의 서포터들이다. 90년대 중반 쯤 이들이,
오~
부천 에프씨! 오~ 부천 에프씨! 오~ 부천 에프씨! 영원히 함께 해
로 부르던 응원가가 <오! 필승 코리아>의 원형인 것이다. 원래 "대~한민국"도 수원 삼성
서포터들의 구호 "수~원삼성"에서 나왔듯, 붉은악마의 응원들은 K리그 서포터들의 것을 변형한 것이 많다.
그런데 가사와는 달리, <오! 필승 코리아>의 멜로디의 기원에 대해서는 여러 학설이 분분하다.
아일랜드 민요에서 왔다는 설, 프리미어 리그 서포터들이 만들었다는 설, 일본 서포터들이 부르던 노래라는
설, <올레올레(Ole Ole)>를 변형해서 써먹는 세계적 경향을 참조해 만들었다는 설 등등...
그러나, 이 모두가 가설일 뿐, 명확하게 확인된 바는 없다. <오! 필승 코리아>를 누가
언제 작곡했는지는 불분명하다는 얘기다. 이거 아시는 독자께서는 즉각 제보 때려 주시기 바란다. 여튼,
붉은악마는 2002 월드컵을 대비해 <오! 필승 코리아>의 각을 제대로 잡아주는 작업에
착수한다. 무반주로 관중석에서 불려지던 곡을, 전문 작곡가 이근상 씨에게 편곡을 맡긴 것.
그리고 그에 의해 편곡된 버전이 나왔으니, 그것이 바로 윤도현 밴드의 <오! 필승 코리아>다.
이렇게 버전업된 <오! 필승 코리아>의 인기는 아시다시피 한국팀의 승수와 비례했고, 또한
아시다시피 거국적인 히트송이 됐다.
그리고 잔치가 끝난 2002년 8월, 편곡자 이근상씨는 <오! 필승 코리아>를 한국저작권협회에
등록한다. 2개월 뒤인 10월에는 붉은악마 회원이자 부천 서포터 소속의 강모씨와 김모씨가 한국저작권심의위원회에
저작권 등록을 마친다.
즉, 같은 노래를 두고 두 쪽에서 동시에 저작권을 등록한 것이다.
<오!
필승 코리아>의 실종 경위
이 '저작권 중복 등록'의 문제는 그 후 3년 간 잠잠했다가, 작년 말 SK 텔레콤과 붉은악마 간의
후원계약이 결렬되면서 다시금 불거져 나오게 된다. 그 앞뒤를 살펴보면 이렇다.
2002년 월드컵 당시 SK 텔레콤의 후원을 받았던 붉은악마는, 작년 말 KTF와 후원계약을 전격
체결한다. SK텔레콤이 축구 발전 지원 약속을 지키지 않았으며, 부천 SK의 연고를 제주도로 바꾸는
등등 각종 '반축구적(그렇다. 이 넓디넓은 세상엔 이런 말도 있다...)'
행위를 했다는 것이 후원사 교체의 이유였다.
결국 붉은악마는 SK 텔레콤과 등을 돌리게 됐고, SK 텔레콤이 또다시 윤도현 밴드와 전속 계약을
맺자, 저작권자의 권한으로 이들의 <오! 필승 코리아> 사용을 불허한다.
붉은악마와 SKT, 윤도현 밴드, 이 셋 중 <오! 필승 코리아>에 대해 '정황적'으로
확실한 소유권을 가지고 있는 붉은악마로서는, 싸우고 결별한 파트너가 <오! 필승 코리아>를
사용하는 걸 두고 볼 수만은 없었던 것이다. 게다가 이제 새 후원사도 생긴 마당에야.
이런 상황 덕분에 SKT와 윤도현 밴드는 결국 <애국가 락 버전>을 발표하는데, 이와 비슷한
시기에 붉은악마도 <REDS, Go Together>를 공식응원가로 발표한다.
그런데 여기에서 궁금한 것은, 붉은악마가 왜 <오! 필승 코리아>를 버리고, 누구에게도
생소한 새 응원가를 내세웠을까 하는 점이다.
먼저, 저작권 문제가 있었다.
붉은악마는 <오! 필승 코리아>의 탄생 과정을 따져 이근상씨에게는 저작권이 없다는 입장이다.
반면 이근상씨는, 이 노래가 원래 유럽의 노래 두 곡을 짜깁기 해서 만든 것이므로 붉은악마도 저작권
없으며, 자신도 작곡자가 아닌 편곡자로서 저작권 등록을 했을 뿐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일단,
우리나라 저작권법에서는 원 멜로디에 대한 단순한 편곡은 저작권을 주장할 수 없음을 먼저 얘기해둔다)
이 <오! 필승 코리아>의 저작권 문제는, 지난 5월 붉은악마가 소송을 제기함으로써 자칫
법정싸움으로까지 번질 가능성까지도 가지고 있다.
두 번째로는 후원사의 이해관계.
경쟁사 SKT가 단물 다 빼어먹은 응원가를 KTF가 그대로 다시 재활용할리는 없었던 거다.
KTF의 입장에서는, 경쟁사가 히트를 시킨 전국적인 지명도의 <오! 필승 코리아>를 누구도
사용하지 못하게 해 놓은 다음, 새로 만든 응원가를 붉은악마의 후광을 업고 대대적으로 홍보하는 것이
가장 좋은 마케팅 전략이었다.
정리하자면, 그것이 확산된 과정이야 어떠했건간에, 이제는 누구나 알고 쉽게 부를 수 있는 대표적인
축구 응원가 <오! 필승 코리아>는, 작게는 붉은악마와 이근상씨의 저작권 다툼, 그리고 크게는
SKT와 KTF의 월드컵 마케팅 전쟁 덕분에 4년도 지나지 않아 자취를 감추게 된 것이다.
<오!
필승 코리아>는 내꺼?
자고로 모든 일에는 '나아가는 부분'과 '나아가게 하는 부분'이 있다고 했다.
월드컵에서 '나아가는 부분'이 참가 각국의 축구에 대한 열정이라면, '나아가게 하는 부분'은 뭐니뭐니해도
돈이다. 돈 없이 이 대회 절대로 굴러가지 않는다. 이런 건, 굳이 이걸 얘기하는 것조차도 심히 촌스런,
너무나 당연한 얘기다.
그러니 스포츠가 상업주의에 물들어서 순수성이 훼손됐다느니 하는, 아리랑 목동스러운 얘기는 관두자.
다들 아시다시피, 월드컵은 철저하게 상업성 위에서 만들어진 스포츠다. 그리고, 어느 정도 공평한 경쟁을
위한 룰만 지켜진다면, 이러한 상업성 자체는 크게 문제될 것은 없다.
오히려 문제라면 상업성보다는, 올림픽에서 자주 목격되는 것 마냥 특정 국가넘들(미국넘 등의 특정 국가를
굳이 지칭하지는 않겠다만)에게 번번이 편파적인 판정을 일삼는 정치성이 더 문제겠지.
다만, 이런 건 있다.
아무리 그러한 판이라 해도 월드컵은 기본적으로 국가 대항전이고, 그런 특성 덕분에, 의도했건 의도하지
않았건 언 넘도 함부로 '이건 내꺼'라고 주장할 수 없는 부분, 즉 공공의 영역이라는 게 생긴다는 것
말이다.
그리고 <오! 필승 코리아>가 바로 그런 부분 중의 하나다.
물론, 이러한 반론이 있을 수 있다.
아무리 대중적으로 크게 사랑받은 곡이라 하더라도, 그걸 이유로 개개인의 정당한 권리를 포기하라는 건
부당한 거 아니냐라는. 지당한 얘기다.
하지만, 이 경우는 다르다.
<오! 필승 코리아>의 경우는, 저작권을 주장할 수 있을만큼 명백한 개인의 창작물이 아니다.
이 노래를 처음 시작했다고 하는 붉은악마나, 이 노래를 제대로 된 노래 형태로 편곡을 했다는 이근상씨나
모두, 처음부터 끝까지 이건 나의 창작의 산물이라고 얘기할 수 없는 입장에 있다는 건 위에서 얘기한
바와 같다.
혹, 이런 얘기가 나올지도 모르겠다. 우리들은 저작권 등록을 했으니까 저작권자라고? 만에 하나 그런
생각을 하신다면, 잽싸게 생각 고쳐먹으시라들.
양쪽 모두 저작권 등록을 한 기관들은 사법적인 권한을 가지지 않은 기관들이고, 따라서 그 '등록'은
법정에서는 아무런 강제력도 발휘할 수 없는 카인드오브 '등록'이니까.
뭐, 이런 정도야 본지가 얘기 안하더라도, 다들 아실 쌩기본이라 믿고...
다들
고마 좀 해라
자, 이제 얘기를 정리해보자.
일단 붉은악마에 한 말씀.
니들의 공로 다들 안다. 순수한 축구열정만으로 생겨나 아무도 안 봐줄 때도 존나 열심히 대표팀 서포트하고
연구도 많이 한 거, 아는 사람은 다 안다.
2002년, 스스로도 감당하기 힘들 정도의 규모의 팽창을 돌파하며, 힘겨운 내부논쟁을 겪기도 했고,
그러면서 챙겨야 할 식구도 많은 거대 조직이 되었으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가 대표 축구에 대한 열정만큼은
식지 않았다는 거, 의심 안한다. 하더라도 약간만 하께.
해서, 공식 후원사가 첨예하게 경쟁하는 두 통신재벌 사이를 왔다갔다하고, 그 와중에 잡음이 불거져도
그 정도는 어쩔 수 없다고 본다. 응원 흙 파먹음서 하는 거 아니니까.
그리고, 새 후원사도 생긴 마당에 저작권 문제 불분명하고 껄끄러운 노래 털어버리고, 저작권 확실한
'공식' 응원가를 새로 만들어서 열심히 밀어줘야만 했던 상황도 어느 정도는 이해는 간다. 왕년 경쟁사가
나서서 히트시킨 곡을 그대로 이어받아 써먹을 수는 없었던 새 스폰서의 입장도 고려해야 했겠지.
하지만 붉은악마가 '민간조직'이라도, 어쨌든 붉은악마는 국가대표의 응원을 위해서 만들어졌고, 운영됐고,
그렇게 힘을 얻은 조직이다. 그러한 조직의 입장을 생각하면, 응원가의 교체문제는 더 신중하게 결정했어야
했다. 즉, <오! 필승 코리아> 껀은, 저작권 문제를 핑계로 그렇게 간단하게 갈아치울만한,
그런 성질의 일은 아니었단 얘기다.
그 곡에는 수많은 사람들의 열정과 추억이 고스란히 담겨있고, 그것은 어떤 개인이나 조직의 것도 아닌,
2002년 6월을 만들어 낸 모두의 것이기 때문이다.
해서 본지는, 붉은악마 측에 <오! 필승 코리아>의 저작권 주장을 고마하실 것을 권고한다.
다시 말하지만, 붉은악마가 이 노래를 처음 응원가의 형태로 다듬고, 그걸 유행시킨 공로가 아무리 크더라도,
그건 저작권과는 별개의 문제다.
또한, <오! 필승 코리아>의 편곡자께도 한 말씀 드린다.
요새 새로 만드신 <오! 필승 코리아>의 새 버전, 신인가수가 부르고 있더라. 그 프로모션으로도
바쁘실 텐데, 편곡자 분께서도 고마 저작권 주장을 포기하시라.
본지의 판단으로는, 우리나라의 저작권 환경을 볼 때 <오! 필승 코리아>의 경우 뿐만이
아니라 어떤 곡이라도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편곡자의 저작권 인정은 거의 안된다고 본다. 만일 된다고
해도, 몇 년 동안 본전도 못 뽑는 지루한 법정 공방을 벌일 각오는 하셔야 할게다.
결론
살다보면 가끔, 정말이지 존나게 가끔 있는 일이지만, 버림으로써 더 큰 것을 얻는 경우도 있다.
그리고, 지금이 바로 그 때다. 양쪽 모두에게 말이다.
하다못해 한국인도 아닌 故 안익태 선생의 미망인이 애국가의 저작권을 무상으로 헌납한 일을 생각해보라.
이 경우는 심지어, 누구도 의심할 여지 없는 확고부동한 저작권자까지 있다.
이런 점을 생각해보면, 지금 <오! 필승 코리아>를 둘러싸고 벌어지는 일들의 염치의 수준을
대충 짐작해볼 수 있다.
쪽팔린다.
대체 뭐하는 짓인가, 이게.
- 딴지 편집국
